주님께서는 ‘들으라 (3절, 헬 아쿠에테, 히 쉐마)’로 시작하신다. 롬 10:17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하는데, 그래서 3절과 14절의 ‘씨 뿌리는 자’ 역시 그리스도시다. 특히 14절은 ‘말씀 (로고스)’을 뿌리고 계심을 기록하는데, 로고스이신 주님께서는 역시 로고스를 뿌리신다. 이 로고스는 그냥 ‘정보’가 아니라 ‘씨’ 즉 뿌리고 심기고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는 생명, 즉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곧’ 혹은 ‘즉시’라는 단어가 꽤 나오는데, 헬라어로 ‘유뚜스’라는 이 말은 신약에 80번 나오지만 마가복음서에만 40번 등장하고 이번 장에만도 5, 15, 16, 17 절 그리고 내일 말씀 29절 등 5번이나 나온다. 5절 돌밭에 대해서 ‘곧 싹이 나오’고 또 16절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절 또 ‘곧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한다. 말씀을 즉시 받고 기뻐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들은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가 올 때 ‘넘어지는 (실족하는, 스칸달리조)’데, 삶의 기본적인 어려움에 의해 그 받은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고 배교하고 만다. 그에 비해 가시나무들 사이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았는데 (7절) 그러한 기운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길가에 대해서는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다고 말씀하시는데 (15절), 결국 결과가 빨리 나타나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님을 들려주신다.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롬 8:25은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기록한다.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문제는 바로 말씀이 씨라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히 4:12)’, 그래서 좋은 땅에 뿌려지면 자라서 후에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신 것과 또 8절과 20절에 ‘30 60 100배’를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열매’는 사과 같은 형태의 것 보다는 사실 다시 그 동일한 씨 자체임을 깨닫는다.
흥미롭게도 이 ‘열매 (카르폰)’은 계속 단수로 기록되는데, 그래서 어떠한 결과물을 의미하기 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연상케 한다. 갈 5:22-23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여기 열매 (동일한 카르폰) 역시 단수이다. 아가페이신 하나님께서는 (요일 4:8, 16) 다른 것이 아닌 역시 동일한 아가페를 맺으신다. 그런데 이 아가페는 비밀스러운 (11절) 단어이기에 ‘성령의 열매는 아가페 (곧) 희락.. 등등’ 8가지 모습으로 설명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누리며 그리스도로 성장하고 역시 그리스도를 내고 그리스도화 된다. 이러한 순환은 열매를 얻는 생명의 순환이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외인 (18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겸손함으로 주께 와서 그 비밀 혹은 신비를 물어야 한다.
주님, 그 근원도 방법도 결과도 모두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그 동일한 말씀을 우리 삶 가운데 더욱 풍성히 얻기 원합니다. 아가페이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오늘 조금 더 결실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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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로고스이신 주님 자체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누리며 그리스도로 성장하고 역시 그리스도를 내고 그리스도화 됩니다. 이것은 열매 (단수)를 얻는 생명의 순환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외인 (18절)’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겸손하게 주께 와서 그 비밀 혹은 신비를 여쭤야 합니다. (막 4: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