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은 소위 ‘소 복음’이라고 한다. 즉 종으로서 오신 주님을 증거하는데,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셔서 열심히 기도로 하루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새벽기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간구하기 보다는 하루를 섬기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원칙이다)
1장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 중 명령어들이 몇 있는데, 15절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17절 ‘나를 따라오라’ 25절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41절 ‘깨끗함을 받으라’ 44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 그들에게 입증하라’ 등이다. 그런데 그 시제가 각각 달라서 15절은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매우 중요한 명령이기에 현재진행형이 쓰였고, 17절은 흔하지 않은 경우로 시제가 없는 형식의 명령형이며, 25절 이하 모두 아오리스트지만 44절 ‘가라’는 현재진행형이다.
헬라어에서 시제는 매우 중요한데, 그 상태와 느낌을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오리스트 시제는 그 정확한 때의 여부를 떠나 명령형으로 쓰일 때 바람(바램)을 의미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할 때, 흥미로운 것은 먼저 나병 환자에게 ‘깨끗함을 받으라’고 한 것인데, 아오리스트는 대게 명령형으로 쓰일 때 약간은 간접적인 표현으로, 현재진행형 보다는 좀 더 겸손하고 상대를 높이는 형태이다. 예를 들어 주기도문을 포함하여 하나님께 하는 모든 기도는 아오리스트 시제로 되어 있다. 그래서 41절은 우리 말로는 ‘깨끗함을 받으세요’ 혹은 ‘받으시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25절 주님께서 귀신에게 하는 명령 역시 아오리스트 시제라는 것이다. 찾아보니 성경 전체에서 귀신(다이몬)에게 주님께서 명하실 때 모두 아오리스트 시제가 쓰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일 아오리스트가 존대를 의미한다면 주님께서는 귀신에게 부탁하며 높이셨던 것일까?
묵상하며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먼저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가 있으시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거역한 귀신들이 반드시 그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현재 진행형 보다는 아오리스트를 쓰셨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막 5:8 개정역은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에서는 ‘나오라 하셨다’가 미완료 형으로 한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번 명하셨던 것을 귀띔해 준다. 귀신(다이몬)들은 원래 불순종의 영이다 (엡 2:2).
또 다른 이유라면 귀신이라도 그 격을 존중하셨던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인간 특히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시기에 더욱 그러하실 수 있다. 유 1:9에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이라고 기록하는데,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7)’, 또 하나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 (히 2:7)’셨다는 기록을 보며 그러한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더욱 큰 이유는 아마도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선 나병 환자에게도 아오리스트 시제로 말씀하신 주님의 겸손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귀신 다이몬에게 명령하시지만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당사자만 보이기에, 귀신에게 명할 때 그 명을 듣는 다이몬 들린 자나 주위에서 보는 이들은 모두 그 당사자에게 명하시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즉 그 당하는 이는 다이몬이 그에게서 나갈 때 자신의 자존감에 매우 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마 존대하신 것 아니었나 한다. 주님께서는 그 ‘권위 있는 새 교훈 (27절)’으로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 더러운 죄인으로 홀대받아야 했던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대하셨다.
주님, 주님을 주라 부르는 우리들이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함을 (요13:16) 잊지 않게 하소서. 다이몬 들린 자라고, 병든 자들 혹은 나보다 못하게 보이는 자들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나 역시 소망없던 자였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오셔서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서로 높이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소서.
페북 나눔:
종으로 섬기기 위해 오신 주님께서는 종이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것 처럼 새벽에 기도로 준비하셨고, 권위있는 분이셨지만 또한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존대하셨습니다. 더우기 귀신(다이몬) 들린 이에게도 아오리스트 시제로 말씀하시며 그의 자존감을 돌보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 보다 크지 않습니다. 나 역시 소망없던 자였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오셔서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막 1:3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