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이 왕이신 주님에 대해 증거한다면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졌다는 마가복음은 주님의 종된 모습을 증거했다고 하는데, 쉬지 않고 '곧' 움직이시는 주님의 모습들이 많이 기록됨을 본다. 1 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운을 떼는데, '시작'을 말하면서 '침례자 요한'을 언급한다.
'세례 요한'이라고 어릴 때 부터 들어온 단어는 잘못된 번역인데, 원어는 '밥티조'로 '세례' 즉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몸을 물에 완전히 담그는 (혹은 잠기는) 의식이며, 성경 그 어느 구절도 '침례'와 '씻는' 것을 같이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발을 씻는' 것과 침례는 별개이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는 행 22:16만이 그런 느낌을 주는데, 잘못된 번역으로 원어는 순서가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서 침례를 받으라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불러 너의 죄들을 씻으라'로 되어 있다. 즉 침례가 씻는 것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죄들을 '씻는' 것과 같이 간다.
4절 역시 '씻는' 것은 몸이 아니라 '죄들'인데,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매 (킹제임스)'로 되어 있다. 여기의 '죄들'은 복수로서 각자가 행한 죄들이며 그것들의 용서 (사면, 해방, 사함)는 '회개'를 비롯한 '침례'를 통해서이다. 한면으로 이러한 요한의 사역은 큰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당시 건물뿐인 모습이지만 성전도 존재했고 제사장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떠나 광야에서 외치며 요단 강에서 침례를 베푸는 요한은 구약 성전 중심의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한국이 3대 기독교 교파인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중 오직 침례교만이 침례를 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단'들이 오히려 침례를 준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여호와의 증인도 몰몬교도 침례를 준다고 한다. 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어떻게 침례를 주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세례'가 아닌 '침례'를 주는 것에 있어서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세례면 어떻고 침례면 어떠냐 하는 견해가 있는데, 성찬과 더불어 이 문제는 더 이상 절기나 제사가 필요없는 신약 교회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의식들이다. 바울이 자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소명받았지 침례를 위해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침례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바울 역시 침례를 받았다.
8절은 원어를 참조하면 '참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물 안에서 잠기게 하지만 (즉 침례를 주지만) 그는 그대들에게 성령님 안에서 잠기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기록하는데, 물침례는 옛자아가 장사되고 주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지만, 성령 침례는 성령에 잠기는 것, 즉 성령에 충만되고 그 다스리심 안에 있는 것임을 말씀한다. 이것은 물침례가 1절의 '시작' 즉 복음의 시작 그리고 믿는 이들로서 신앙인 혹은 제자들의 삶의 시작임을 말하며 후에는 지속적으로 성령에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죄가 없으신 주님 역시 침례를 받으셨는데, 그가 '인자'로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례 후 10-11절에 주님의 신성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14절은 원어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으로 되어 있는데, 1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해서 그 복음이 바로 '왕국의 복음'이며, 15절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신다. 그 분의 복음이 시작되었고, 이는 왕국에 대한 것이며, 그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고, 그 시작은 유명무실한 성전과 제도 안에서가 아니라 자아와 더불어 그 모든 것을 끝내는 침례로 시작한다.
주님, 2019년 새로 시작하는 오늘 그 시작이 왕국의 시작이며 내가 끝나는 시작이며 때가 찬 경륜으로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시는 날 되게 하소서. 여러면에서 회개함으로 복음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한해, 섬길 수 있는 올해가 되게 하소서.
페북 나눔:
복음은 왕국 복음이며 이는 그리스도 십니다. 나를 끝내는 침례로 시작되고 때가 찬 경륜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주도하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막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