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삶은 교만했던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고 결과적으로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했던 귀한 삶의 귀감이 되었다 (33).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와 권력을 주셨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특히 그가 하나님을 성심으로 섬기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은 더욱 큰 은혜다.

 

31절은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고 기록하는데, 문맥이나 문법상 ‘다 알고자 하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어떻게 보면 결국 히스기야의 심중을 히스기야 자신이 깨닫게 하기 위함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왕상 8:39, 대상 28:9, 대하 6:30) 그러한 시험을 하실 필요도 없지만, 성경에서는 종종 창 2:19, 8:2, 3:18  등 여러 곳에서 우리를 시험 하신다고 말씀한다그리고 많은 경우 그러한 시험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것 같다는 점이다.

 

‘떠나다’의 히브리 원어는 ‘아잡’인데, ‘떠나다, 버리다, 느슨하게 하다’ 등을 의미한다떠난다는 것은 교제가 멈추고 영향력을 벗어난다는 것인데, 경험상 거기에는 거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특히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또 유지할 수도 있다오히려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먹할 수도 있는 것이다우리의 마음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임재도 우리를 떠난다.

 

우리는 많은 때 시험에 불합격하지만, 결국 깨닫고 배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거나 의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자각은 우리로 하나님을 더욱 추구하게 만든다 (고후 7:11).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 ( 26:2)’시기 위함이고,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 ( 8:16)’이다그 복이 바로 은혜인데, 히스기야는 온갖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정작 그가 누린 은혜의 본질과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이다 (32:7, 8).  이것은 또한 그가 ‘그의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31:21). 

 

주님, 우리가 가끔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때라도 의기소침해 하는 교만으로 빠지지 않게 하소서오히려 거룩한 분냄과 아쉬움과 열심으로 주를 더욱 추구하게 하소서히스기야가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음을 기억합니다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무릎꿇고 이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오늘의 히스기야들을 세우소서은혜는 우리로 아버지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시며, 그 임재를 누리는 것임을 압니다오늘도 우리를 사로잡으소서.

인정에 매인 잘못된 교육, 환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은혜 (대하 33:1-13)

 

왕하 21 1절은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고 기록하며 그 어머니에 대해서도 언급한다히스기야는 기록에 의하면 아들이 므낫세 단 한명인데, 왕하 20:18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원어 복수, 아들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기록하지만 이것은 그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따라서 므낫세가 뒤를 이어 왕이 되고 그가 등극할 때 나이가 겨우 십 이세였다.

 

흥미로운 것은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 38:1)’고 하셨고, 이에 히스기야는 소위 면벽 기도를 했고, 15년의 삶을 연장 받게 된다 ( 38:5).  즉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후사 없이 죽을 뻔했던 것을 가까이 모면해서 얻은 귀한 아들이었는데, 당시 히스기야는 매우 부유했으며 늦게 얻은 독자를 과하게 사랑하며 아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더우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인데, 이사야가 62:4에 언급했던 더할 수 없이 좋은 이름이다.

 

이러한 배경을 보면 므낫세가 올바르게 성장했어야 했는데,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치하며 전반 대부분의 통치 기간 동안 그는 완전히 그의 아버지의 길을 잊고, 이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유다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그 이유에 대해 그의 주위에 올바른 조언을 하는 신하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한 면으로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이제 더 이상 없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또 왕하 20:17의 예언도 있었지만, 이러한 기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좋은 배경이나 좋은 씨가 인격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특히 아마도 그는 어릴 때 과한 관심과 사랑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자랐을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 열 두살이 되어 등극하자 더 이상 거칠 것이 없게 된다사람에 대해 평가하거나 기대할 때, 그가 속한 가문이나 배경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배경이 그 인격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못한다.

 

13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히스기야의 가장 심각한 실수는 비록 므낫세가 아직 어릴 때 그는 죽었지만 왕위보다 더 귀한 그의 신앙의 유산을 전수해 주지 못하고 떠났다는 점이다.  ‘헵시바라는 귀한 이름의 므낫세의 어머니 역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환난을 당해야 (12) 겸손하게 되고 또한 여호와를 찾게 되었는데,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라도 결국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은 은혜다.

 

주님, 고난에는 여러 모양과 원인이 있겠지만, 주님처럼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울 수 있게 하소서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귀한 유산은 인생의 비밀과 목적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소서우리로 주님의 언약 아래 있는 주님의 백성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