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에 기록된 성전 결례는 먼저 성전 외부와 내부에 있던 더러운 것들을 청소한 것으로 시작해서 17절은 ‘첫째 달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달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라고 기록한다. 즉 청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점진적으로 외부에서 내부에 이르기 까지 ‘성결식’을 했다. 보여지는 청결함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 하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성결은 번제로 이어지며 또한 이어서 속죄제로 이어지는데, 흥미로운 것은 왕과 회중이 속죄제물인 숫염소에 안수했다는 것이다. 대개 ‘안수’를 ‘전가’ 즉 나의 죄가 제물인 짐승에게 ‘옮겨’지거나 혹은 어떤 이의 능력이 다른 이에게 전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잘못된 이해다. 영화 특수 효과나 애니메이션에서나 찾아 볼 수 있지, 적어도 그러한 인식을 성경에서 찾기 힘들다. 성경에서 나오는 안수는 ‘동일화’를 의미한다. 즉 안수하는 주체와 받는 대상이 같아지는 것이다. 만일 ‘전이’라고 한다면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 안수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또한 히브리서 10:1-4 특히 4절은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기록했는데, ‘전이’라고 한다면 안수하는 즉시 사람의 죄는 동물에게 들어가 사람은 더 이상 죄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의식은 오히려 ‘다시 죄를 깨닫게 (힘 10:2)’ 하며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10:3)’ 한다. 대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제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음을 분명히 하는데 (히 10:2, 18), 바울은 주님의 이러한 공로가 우리의 것이 된 것은 그 분의 죽으심이나 부활하심이 주님 홀로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포함되었음을 밝힌다 (롬 6:4, 8 갈 2:20, 엡 2:5-6, 골 2:12, 20, 3:1, 3). 즉 ‘전이’가 아니라 ‘동일화’이다. 그래서 과거 제사에서 안수를 통해 나와 같게 된 제물은 나 대신 죽는 것이다. 딤전 5:22은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것을 명한다.
이러한 온전한 죄사함의 인식 후에 참된 찬양이 따르는데, 27-28절은 번제 드리기 시작하는 동시에 찬양을 시작해서 번제를 마치기까지 했다고 기록한다. 탈대로 다 탈때까지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며, 그 찬양은 동시에 우리의 누림이 된다.
주님, 우리 오늘의 삶 속에서 외부로부터 시작해서 내부에 이르기 까지 청소되며 성결되게 하소서. 주님의 효능있는 보혈을 다시 의지합니다. 우리의 참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만지며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갑니다. 주님의 공로로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는 죄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었음을 보며 진정한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