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스는 자신의 자녀들을 불사르기 까지 악을 행했고, 그의 여러가지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으로 인해 아람과 이스라엘은 수 많은 유다 사람을 죽이고 사로잡아 감으로 또한 그에 상응한 악을 행했다. 선지자 오뎃이 이에 대해 이스라엘에 경고하고 에브라임 자손의 우두머리들 역시 그들의 허물에 대해 경고하자 그들은 포로들과 노략품들을 놓아준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의 이유가 이전과 같이 역시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6절)'고 말씀한다. 아하스 왕은 그 후에도 이방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되려 공격당했고, 에돔과 블레셋도 때를 타서 백성들을 사로잡고 주변 마을들을 점령한다.
흥미로운 것은 19절에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라고 언급하는데, 아하스는 유다의 왕이지만 여기에서는 유독 '이스라엘 왕'으로 기록된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로 그 정통성은 남유다 계열이고, 주님의 족보 역시 남유다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아하스는 이스라엘 왕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큰 악행을 계속 저지르는데, 그것은 자신이 '이스라엘 왕'임을 망각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또한 역사를 잊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원래 역사를 시작하신 여호와를 잊은 것이 그 근본 원인이다.
창세기는 '태초'로 시작하고, 구약은 항상 애굽에서 건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하며, 이는 이스라엘의 독특함을 역사를 통해 상기시키고, 마태복음도 처음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하는 족보로 전개되며, 요한복음 역시 '태초에'로 시작한다. 시작을 더듬어 가다보면 하나님을 만나는데, 이는 진정한 역사의 시작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우리로 깨닫게 한다. 이러한 역사를 잊은 아하스는 죄악을 행할 수 밖에 없었다.
22절은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라고 기록하는데, 전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라고 기록된 것을 상기시킨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궁극적으로 곤고한 것임을 깨달을 때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하나님을 기억해야하지만 아하스는 더욱 여호와께 범죄했다. 현재 한국의 여러 힘든 상황이나 미국의 여러 죄악들 역시 그 국부 founding fathers를 잊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기억해야 한다.
주님,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 (행 17:27)'셨지만 죄인은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 일부러' 하나님을 잊습니다 (벧후 3:5). 우리에게 처음이 무엇이고 누가 시작하셨는지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으며, 그 분은 이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심을 봅니다. 주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