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속에 끊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은데, 주님과의 교제와 동행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끊어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요 15:2에 ‘…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깨끗하게 하다’는 말은 ‘가지치기’를 의미한다. 즉 불필요한 곳에 영양이 허비되는 것을 막음으로 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 (32절)’지만, 두 가지를 끊지 못했다. 하나는 ‘산당’이고, 다른 하나는 ‘인정’이다. 33절은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하는데, ‘마음을 정하여’라고 번역된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 ‘쿤’이라는 단어가 눈에 띤다. 원래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마음을 정하고’ 그를 ‘향하고’ 그 안에 ‘굳게 서야’ 하는데 (괄호 안은 모두 ‘쿤’의 의미), 산당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또한 바꿔 말하면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 산당이라는 것은 매우 특이한 장소인데, 소위 말하는 토속신앙 혹은 샤머니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샤머니즘은 기독교 신앙을 혼합주의로 만들어 버리는데, 흥미로운 것은 샤머니즘에는 우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idol 대신 icon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떤 다른 보이지 않는 것으로 뒤바꿔 버리는 아주 무섭고 교묘한 사단의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인정’인데, 같은 혈통이라는 것과 뿌리가 같다는 점이 아마도 아사로 시작해서 계속 북이스라엘과 통일을 염원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다 (35절). 결국 이 두 왕은 서로 연합했는데 (36절), 이것은 후에 매우 큰 해악으로 열매 맺는다. 후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고, 21:6은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기록한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 즉 아하시야의 누이와 결혼을 한 것이다.
연합 혹은 통일이 좋은 것이 되려면 반드시 주님 안에서 되어야 한다 (엡 1:10). 인본주의적인 연합이나 통일은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오게 되고 언젠가는 반드시 깨어진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혹은 혈통이 같다고 또는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통일을 이룰 수는 없다. 순수한 혈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반면에 모든 민족은 아담 혹은 노아의 후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마 12:46-50에 그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 있다는 말을 듣고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주님, 우리 마음이 주님께로 고정되는 것을 방해하는 산당의 모든 요소들을 끊도록 결단(決斷)하게 하소서. 먼저 주님 앞에 올바로 섬으로 인정으로 연합하려는 시도를 멈추기 원합니다. 하나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심을 고백합니다. 끊을 것을 끊을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오늘 주님과 우선 연합함으로 형제들과도 하나되면 감사함이 넘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