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원래 장절로 구분되지 않았고 상하로 나뉘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19장은 새롭게 시작하는 장이 아니라 18장과 연결되는 장이다. 18장 마지막 절은 아합이 화살에 맞아 고생하다가 해 질 즈음에 죽었음을 기록하는데, 바로 다음 19장 1절은 '그리고, 그런데' 등을 의미하는 접속사 'waw (혹은 vav)'로 시작한다. 즉 아합은 죽었지만 여호사밧은 평안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음을 극명히 대조한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같은 전쟁터에 있었고 오히려 더 큰 죽을 고비를 당했었지만 아합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한 반면 여호사밧은 평안히 살아 돌아온다. 이것은 은혜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여호사밧은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하는 말을 달게 받는다. 즉시 그 자신부터 겸손하게 말씀을 받고 회개하고, 후에는 유다를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고 재판관들을 성읍마다 세우고 그들에게 바른 명을 내린다. 또한 그들에게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9절)'고 명령한다. 이러한 여러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먼저 그러한 일에 대해 온전하게 행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원전사고, 쯔나미, 지진, 끊이지 않는 기근, 질병, 등등 많은 재난들이 있었고 근래에는 캘리포니아에 큰 산불도 있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평안하기만 하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평안을 주신 것은 주께 감사하며 회개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시기 위함임을 다시 깨닫는다. 11절은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로 끝맺는데, '선한 자'는 'the good' 혹은 히브리어 '토오브'로 막 10:1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기록했던 '선한 이'와 동일하다. 오직 선한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지만, 그 분의 동일하신 생명을 소유한 우리들은 회개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힘써 행할 때 (11절, 원어는 용기있기 행할 때) 우리도 거룩하며 선한 자로 서게 될 것이다.
주님, 은혜를 더욱 깨닫고 누리기 원합니다. 마음껏 숨쉬고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시간을 쓸 수 있는 일상이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더욱 큰 은혜는 주 앞에 회개할 수 있고 주님과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은혜가 더욱 풍성한 하루되게 하소서. 주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과거 들었던 비난이나 실패의 기억 혹은 현재의 녹록지 못한 상황은 우리로 주눅들게 합니다. 하지만 임전에 있어서, 무기를 들고 싸우던 아니면 하나님만 신뢰함으로 찬양하며 대열을 갖추던, 그 모양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주님을 신뢰함으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 (롬 8:39)'습니다. (대하 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