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가 분열되는 이유는 외부 세력에 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내부적인 요소에 기인한다.  생각해 보면 남북한 분열 역시 그러한데, 우리는 이제까지 6.25와 그 결과를 포함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주위 열강에 의한 것으로 배웠지만, 그 이전에 이미 남과 북이 갈렸었고, 이는 이념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르호보암의 잘못된 결정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는데, 이러한 실수 후에도 르호보암은 돌이켜서 백성들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화합을 꾀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르호보암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솔로몬의 적자라는 것이다구약에서는 르호보암에 대해 계속 ‘솔로몬의 아들’이라고 기록하는 반면 여로보암에 대해서는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대하 10:2, 왕상 11:26) 이라고 기록한다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을 따르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누가 뭐래도 ‘배반 (19)’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처음에는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의 음성을 따르지 않았지만, 그가 북이스라엘을 치러 올라가려고 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한다 (대하 11:2, 왕상 12:22).  이에 비해 여로보암은 악하디 악했던 왕인데, 그의 적자되지 못함은 그의 결정적 흠이었고 (물론 15절은 이에 대해 아히야의 예언에 따른 것임을 밝힌다), 따라서 여호와의 기본적인 명령인 예루살렘 성전으로 매년 방문하는 제사를 금하고 따로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벧엘과 단에 두었던 것이다 (왕상 12:27-28).  이것으로 더 이상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로 통일될 수 없었다.

 

지난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적자’인 ‘초대교회’ 즉 주후 300년 이전까지 고난으로 그 하나됨을 지켜오던 주님의 교회는 로마에 의해 정치적으로 국교가 되어 버리자 ‘영 안에서 하나 된 것 ( 4:3)’을 떠나 모든 것들이 제도화 되어 버렸다그 결과는 종교개혁에 의한 분열, 그리고 또 다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오늘에 이른다.

 

분열은 반역의 결과인데, 회복의 방법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 외에는 없다‘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라고 호 6:1은 기록하는데, 여호와께 돌아가자며 고백은 해도 말뿐이면 정말 중요한 주님의 몸의 회복은 이룰 수 없고, 단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으로 끝난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됨을 이루는 기준이었다면 오늘 그 기준 역시 주님께서 정하신 것 외에는 없는데, 17:11은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는 주님의 기도를 볼 수 있다. 소위 ‘삼위일체’ 혹은 하나님의 ‘삼일성’을 믿는다면, 이것은 단지 교리가 아니라, 그 삼일성에 의해 우리 역시 온전히 하나됨을 추구해야 한다이것은 우리의 믿음이 교리를 외우는 것에서 끝나는 어떤 ‘신념’이 아니라, 아버지와 주님께서 하나이신 것 처럼 우리도 그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 ( 17:21, 22)’는 것이다그리고 이 ‘하나됨’이 곧 ‘영광’ 혹은 ‘영화롭게 됨’이라는 것이다 ( 17).

 

하나되지 않고, 혹은 하나됨을 추구하지 않고 신자라 할 수 없다분열은 배반이며,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아무리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지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에는 결국 이르지 못한다주님의 용서하심과 구원하심은 우리로 주님 그리고 아버지와 사귐이 있게 하고, 서로 교제하게 하며 영광으로 이끈다.

 

주님, 분열의 문제가 너무도 악한 것임을 다시 봅니다‘선행’만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모습을 구원하시고, ‘하나됨’을 추구하도록 돌이키게 하소서서로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교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주님의 유언과도 같은 기도를 다시 듣게 하소서하나되는 기준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십니다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분열한다면 우리의 믿음과 신념과 고백은 헛것임을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