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세대차이 노사갈등 군위신강 군신유의 올바른 자녀교육 그리고 소위 보수진보 갈등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주목할만한 것은 4절 ‘노역 (아보다)’은 지난 8장과 같은 단어인데 여기서는 ‘고역’이라고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카쉐ㅎ’라는 단어가 함께 쓰였기 때문인데, 사실 백성들에게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다고 8장에 기록했기에 그들이 말하는 고역은 아마도 노예들을 부리는 일 등 상대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규모 공사가 계속되면서 일상 생활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되어 고역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번 장을 이해한다면 지혜있는 노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교훈, 그리고 생명의 삶 처럼 ‘지도자는 선한 통치를 베풀어야 합니다’가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백성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들을 방자하도록 풀어주는 것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또 다시 언제고 그들은 무언가를 더욱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런 문제들 보다는 왕으로서 르호보암이 여호와께 먼저 구하지 않았고, 특히나 교만하게 행했다는 점이다. 원로들과 친구들 양쪽 모두 의견을 듣긴 했지만 그에게 여호와는 없었다. 솔로몬에 견주어 자신을 더 크다고 과시했는데, 전쟁이나 삶의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았던 평안한 세대 출신으로서 아버지 솔로몬의 모든 부와 권력을 함께 누린 것이 그에게는 독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다윗은 물론이고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던 여호와께서는 르호보암에게는 임하지 않으셨다. 인생의 반 이상을 고난 가운데 살았던 다윗은 그 삶 전체에서 여호와를 섬겼고, 솔로몬 역시 다윗을 따라 꽤 오래 여호와를 섬겼지만, 르호보암은 그 삶의 넉넉함 가운데 여호와를 구하지 않았고, 대신 인생 경험이 적고 고난을 모르는 또래 친구들의 말을 따른다. 결과는 왕국의 분열이다.
주님, 고난이 주는 유익은 주님을 따르며 앙망하는 것임을 다시 배웁니다. 저의 부모가 부자가 아님을 감사하며, 저 또한 부자가 아님을 감사합니다. 저의 마음을 주 앞에 더욱 가난하게 하소서. 왕은 위치의 문제이기 보다는 여호와 앞에 서는 것이 먼저임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페북나눔:
르호보암은 원로와 친구들 양쪽 모두에게 듣기는 했지만 정작 여호와께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자로서 아무 노력없이 편안한 삶을 영위하며 부족함없는 삶을 살았지만 이것은 그로 하여금 여호와를 구하지 않게 했습니다. 삶 속에 겪는 고난은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왕이라는 것은 위치의 문제라기 보다는 여호와 앞에 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대하 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