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40년 동안 다스리며 당시 그 어느 누구보다 화려하게 정말이지 럭셔리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도 인생의 마지막을 맞는다. 지혜의 왕으로서 그는 정말 지혜로운 삶을 살았을까? 결말은 아닌 듯 하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고, 혹은 받은 은사가 많다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이 보장되진 않는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혹은 지혜 혹은 은사 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 즉 부요한 생명 (조에)이다.
세상의 금이란 금은 모두 솔로몬에게 모이는 것 같은데, 이렇게 금이 한 곳으로 모이게 되면 국제 경제상 문제가 생긴다. 지혜가 출중했던 솔로몬은 그 모이는 금을 잘 활용해서 주위 국가들을 여호와를 섬기게 하는 대신 자신의 보좌를 화려하게 하고 쓸데없이 금 방패들을 만들어서 그 보관도 레바논 숲 속 나무 집에 쳐박아 둔다. 그 사치가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데, 결국 이러한 금들이 후에는 주위 국가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넘보며 약탈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주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소위 ‘럭셔리’한 삶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대신 풍성한 생명을 약속하셨는데,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가? 믿는 이들에게도 럭셔리한 삶은 허락되었을까? NIV와 NKJV에는 luxury 혹은 luxurious 라는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대부분 부정적으로 나온다. 세상은 럭셔리한 것을 가치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사치이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공산주의는 물론이지만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치때문에 세상 문화가 화려하게 발달하고 그에 따라 박물관에 전시할 것들도 마련되지만 결국 대부분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요 10:10에서 주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들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 ‘풍성히’라고 번역된 단어 ‘페리손 (원형 페리소오스)’은 ‘넘치게, 필요 이상으로, 풍성히’ 등을 의미하며 그 내용은 물질 혹은 재물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다. 즉 그 생명을 소유하는 문제다. 이것은 고난을 당한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과 같은데, 고난을 경험하지 못했던 솔로몬이나 후에 르호보암 같은 후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지혜가 아닌 경험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이러한 풍성한 생명을 보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럭셔리한 삶을 추구하면 불가능하다.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고,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요해도 자진해서 가난한 삶을 사는 것 즉 솔로몬이 보여준 삶이 아니라 오히려 욥이 보여준 삶이 더욱 풍성한 삶인 것이다.
주님, 럭셔리한 삶을 부러워하는 나의 숨은 마음을 폭로하심을 감사합니다. 사실은 솔로몬의 보좌보다 더 편하게 만들어진 의자에 오늘도 앉아 있습니다. 과거 제왕들이 누렸던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우리는 누리고 있습니다. 이 누림 안에서 주님의 풍성한 생명을 위한 자리를 내어드리기 원합니다. 현실적인 걱정이 있건 없건 주님의 어떠하심을 풍성히 누리기 위해 오늘 자리와 시간을 내어드리기 원합니다.
페북 나눔:
솔로몬은 럭셔리한 삶을 누렸지만,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풍성한 생명이 약속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길어야 40년을 럭셔리하게 살았지만 우리가 받은 생명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풍성하고 필요 이상으로 주어진 이 생명이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삶 가운데 넘쳐 흐르기 원합니다. (대하 9: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