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대대적인 건축 사업을 벌인다.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왕궁은 물론이고 그 처와 후궁들의 궁궐 그리고 새로운 여러 성읍들에, 광야까지도 성을 건축하며 여러 견고한 성읍들과 국고성 병거성 마병성 등등을 모두 짓는다. 이 정도의 건축 사업은 여칫 잘못하면 국가를 부도낼 위험도 수반하게 되고 백성들의 큰 원망을 살 법도한데, 국가가 워낙 막강해졌고 특히 이러한 노역은 정복한 이민족들을 노예로 부렸기 때문에 별다른 원성이 없었다.
히브리어로 ‘노예’ 혹은 ‘종’이라는 말은 ‘에베드’인데, 창세기 9: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에 처음 나온다. 영어로는 ‘servant, slave, attendant’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아바드’이며 ‘일하다, 섬기다, 종이 되다, 짐을 지다, 경작하다, 노동하다’ 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 3:12, 12:31 , 20:5 등 구약의 약 20여 구절에는 ‘경배하다’의 의미로서도 쓰였다. 신약에서도 역시 이 ‘예배’ 혹은 ‘경배’라는 말이 두 가지 단어로 나오는데, 몸을 굽혀 절하는 것을 의미하는 ‘프로스쿠네오’와 섬김을 의미하는 ‘ㄹ라트레이아’이다.
흥미로운 것은 14절 제사장들이 섬겼다는 말은 ‘아보다’인데, 역시 동일하게 ‘아바드’를 어원으로 가진다. 즉 문자적으로는 노예들의 섬김과 제사장들의 섬김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노예들의 노역과 제사장의 섬김이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섬기는 것은 결국 자신의 위치를 종 혹은 노예로 취하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 혹은 누구를 섬기느냐는 것인데, 노아의 예언처럼 ‘종들의 종’이 되는 것은 저주가 되고, 주님께서도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4)’고 말씀하셨지만, 만주의 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무엇보다 큰 영광이 되고, 이제 다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27절)’ 함을 말씀하셨다. ‘섬기는 자’는 헬라어로 ‘집사’이며 ‘종’은 ‘둘로스’ 즉 노예인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종들의 종’이 되는 것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결국에는 높여지게 될 것이다 (빌 2:6-9).
주님, 직분은 섬김을 위한 것임을 봅니다. 만왕의 주님께서 종으로 오셨습니다. 주께 경배하며 섬기는 위치인 ‘종들의 종’이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이제 우리가 기꺼이 즐겁게 취할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들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종의 위치를 취할 수 있는 거룩한 이상을 허락하여 주소서.
페북 나눔:
직분은 섬김을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노예’ 혹은 ‘종’이라는 말은 ‘에베드’인데 어원은 ‘아바드’이며 ‘일하다, 섬기다, 종이 되다, 짐을 지다, 경작하다, 노동하다’ 등의 의미이고, 놀랍게도 구약의 약 20여 구절에는 ‘경배하다’의 의미로서도 쓰였습니다. 신약에서도 역시 이 ‘예배’ 혹은 ‘경배’라는 말이 크게 두 가지 단어로 나오는데, 몸을 굽혀 절하는 것을 의미하는 ‘프로스쿠네오’와 섬김을 의미하는 ‘ㄹ라트레이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4절 제사장들이 섬겼다는 말은 ‘아보다’인데, 역시 동일하게 ‘아바드’를 어원으로 가집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4)’고 말씀하셨지만, 만주의 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무엇보다 큰 영광이 되고, 이제 다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27절)’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종들의 종’이 되는 것은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궁극적으로는 높여지게 될 것입니다 (빌 2:6-9).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종의 위치를 기꺼이 취할 수 있는 거룩한 이상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대하 8: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