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이어령 교수가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란 책을 읽었다.

일본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었던 차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제는 많이 내용을 잊었지만, 그 중에 일본인은 모든 것을 축소하는 지향이 있음을 설명하면서 그러한 성격이 그들의 독특한 문화, 즉 그림이나 시, 언어, 상품이나 생활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특히 시나 언어에 대해 일본인은 필요 이상으로 'の' 즉 '노' 우리 말의 '의'를 많이 쓴다. 예를 들어 '일본역사'라는 말은 '일본의 역사'로 해야하듯, の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그래서 유명한 시 중에 (잘은 기억 나지 않지만) 이 'の' 를 연거푸 써서 큰 내용에서 핵심내용으로 들어간 것이 있다고 한다. (아마 무슨 '해변의 모래사장의 외로움의 갈매기' 그런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の' 의 사상은 따지고 보면 매우 막강한 능력이 아닌가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위대한 업적은 그 업적을 가능하게 하는 작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복잡한 컴퓨터나 기계들 또는 운동선수들의 복잡한 몸 동작 등 매우 힘들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작은 프로세스 하나 하나, 마치 필름의 각 프레임의 움직임 처럼 하나씩 해나갈 때 결국은 성공하고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모세가 하루 아침에 모세가 되지 않았고,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했지만, 그의 삶 전체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도록 준비되었었고, 주님을 만난 후도 아라비아에서 3년 간 더 공부를 했던 것 처럼 위대한 신앙도 하루에 한걸음씩 성장한다. 믿음 생활도 역시 'の' 의 연속이다. 한걸음 한걸음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작은 것 부터 시작해서 매일 연속되는 '듣기 연습'인 것이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