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자매,
하오쬬부찌엔아. 쬐진잔마양? 이름이 중국식 발음으로 메이주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
자매들에게 편지를 하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고 연애할 때 조차 여자친구에게도 편지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렇게 자매에게 편지를 쓰게되네. 아마도 오늘 내가 읽은 말씀이 자매를 떠 오르게 해서 그런가 봐. 동생은 잘 있지?
젊을 때 그렇게 열정적이고 성공하기 원했던 만큼 많이 성공했겠지? 내가 20-30년을 보아오니 공부에 목숨걸은 사람은 역시 공부 많이 해서 박사되고 교수나 의사가 되는 것 같고, 돈버는데 목숨걸은 사람은 몇번 굴곡은 있었어도 많이들 성공한 것 같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성공’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것 같은데, 하나는 성취감, 즉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환경, 그것이 부모 등 가정 문제건 아니면 그 외 다른 어떤 문제건, 그러한 것들을 벗어나고 싶어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요즘들어 그 둘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이 드네. 어떤 사람은 성공해서도 불면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보고, 아직도 해결받지 못한 과거의 상처로 행복하지 못한 것도 봐.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어. 아니, 적어도 '당신에게 있어 행복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성공’함으로 삶의 목적을 이루었을까? 내세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어떡해서라도 성공해서, (예를 들어 빌게이츠 같이) 나중에는 그 많은 재산을 기부하고 자선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등등 하지만, 반면에 어떻게 보면 그런 성공을 위해 치닫는 동안에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않았더라도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남들을 위한 것이 되진 않았을까도 생각하게 되네. 그들이 하는 자선 사업의 목적은 어차피 둘 중 하나일테니까. 과거 치열했던 비즈니스 세계에서 행했던 많은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해 무거운 마음의 짐을 벗기 위한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아마도 ‘의미 있는’ 것을 크게 펼쳐 보이고 싶은, 결국 자신의 강한 자아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닐까? 성취감을 통한 자아의 극대화…
어릴 때는 누구 키가 더 큰가, 좀 커서는 누가 더 공부를 잘하나, 대학교 나와서는 누가 더 돈을 많이 버나 등으로 우리는 자신의 등급을 매기고 삶의 가치를 따지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 아름다운 주께서는 전혀 관심없으신 것 같아. 정말 주님은 우리와 너무 다르지… 다만 주님은 그 분의 어떠함을 우리가 기뻐하며 온전히 받아 누리기 원하셔. 마치 아침에 마시는 모닝 커피처럼…
미주 자매도 지금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주님 앞에 가지고 가서 해결함 받기 바래. 그리고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을 보면 사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엄청나지 않아? (물론 비교에서 오는 감사는 그 한계가 있지만)
아름다운 주님은 세상에서는 ‘메주’같이 여겨질지라도 미주 자매의 마음 속에서 다시 아름답게 거하시고 충만하시기를 기도할께.
옛날에 좋아했던 Keith Green의 노래 가사를 쓰며 마칠께. 그럼…
Oh Lord, You're beautiful Your face is all I seek
For when Your eyes are on this child Your grace abounds to me
I wanna to take Your word and shine it all around
But first help me to just, live it Lord
And when I'm doing well, help me to never seek a crown
For my reward is giving glory to You
Oh Lord, please light the fire That once burned bright and clear
Replace the lamp of my first love That burns with holy f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