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아,

오늘 만나 참 반가왔다.  내가 요즘 전도서를 읽는데 너랑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다.  주님을 처음 믿고 영접한 후에 너무 기쁘고 말씀도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시작하고, 또 그 뜨거움에 소그룹을 만들어서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하지만 내가 보니 그 뜨거움은 식어지고 소그룹은 실패할 때가 많은 것 같아.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우리의 힘으로 그 뜨거움에 의지해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러한 것에 대해 결심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하나님은 구원 받은 우리에게 먼저 그 분 안에서 안식하고 잘 먹고 잘 배우고, 우리들 속의 숨어있는 죄들과 기질들 그리고 그 어떤 어두움 들에 대해 다루심 받고, 무엇보다 은혜를 충분히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 같아.  마치 아이가 태어나면 우선 잘 먹고 쉬고 보살핌 받아서 성장해야 하는 것 처럼.

그래서 기독교를 단지 종교로 이해한다면 우리도 다른 이들과 같이 선해 보이고 의미있는 것들에 대해 잘 해보겠다고 서약하고 서원하고 맹세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겠지,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 대해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7:15)고 로마서에서 말씀한 것 처럼 우리에게는 선을 행할 힘과 능력과 명분이 없다는 것을 우선 깨닫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거고.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이고.

서원 (誓願)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데, 한자로는 맹세할 서 그리고 원할 원을 써서 ‘맹세’라는 뜻이 있어.  서원, 맹세, 서약 등에 대한 내용은 너무 많지만, 결국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맹세하느냐, 아니면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순수하게 결심하느냐가 다른 것 같아.  사실 우리 믿음 생활에서 절대적인 결심이 서지 않으면 성장이 없는 것은 확실해.  왜냐면 그러한 결심과 소원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주시는 것이거든.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문제는 구약의 많은 서원들이, 특히 처음 서원한 야곱의 경우 자신의 연약함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그 신비함에 들떠서 즉각적으로 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0-22)” 야곱이 후로 서원을 지킨 것 같지도 않고 아마 그 서원을 잊어버린 것 같아. 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은혜로 함께 하시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당신에 대해서 맹세가 필요없고, 우리를 위해 일방적인 언약을 하시지. 거기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믿고 받아들이는 것 뿐이야.  왈가왈부 주님의 언약을 내가 이루겠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그래서 주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마 5:34) 하셨는데, 그것은 당시 유대교가 완전히 종교화 되어서 자신들의 시스템이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모든 요구를 만족시켜 드릴 수 있을거라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이었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선포하며 힘을 얻을 수 있지만 결코 우리 자신에 대해 호언장담하거나 큰소리 칠 수는 없지.  그렇게 하는 것이 매력있어 보여도…

 

그래서 오늘 내가 읽은 말씀의 결론은 바로 7절이야.  ‘…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바로 네 이름이지.  하나님은 사랑으로 정의되셨지만, 그 분의 원래 속성은 거룩하시다는 거지.  즉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고 존경의 대상이지.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대접해 드리는 거야.  그러한 분이 나에게 오셔서 그 분 자신을 나타내시고 나를 받아주신 것은 은혜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본분이야.  그래서 난 네 이름이 좋다.

 

주님, 새로 주님을 영접한 경신 형제, 주님께서 자녀 삼아 주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겸손함으로 주께 배우게 하시고, 좋은 형제들을 붙여주시옵소서.  나도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 때의 겸손함과 설램을 회복하게 하시고 주 경외함을 다시 배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