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를 이기는 연합
선생,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쓰오. 대학교 때 선생과 함께 밤을 지새며 토론하던 것이 떠 오르는구려. 당시 카프카의 부조리에 대해 여러 얘기를 하면서 사회적 부조리는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그 외 어떤 인간의 사회구조 속에서도 항상 계속할 것이라는 말을 한 기억이 나오.
우리가 아는 것 혹은 알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고 또 진실에 대해 액세스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 한계를 느끼며 발버둥 쳐보지만 결국 그러한 것이 우리를 인도할 곳은 허무함 뿐이라는 다소 염세주의적인 생각을 뿌리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는 참된 위로자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나 생각하오.
신의 형상을 받고 태어난 인간이 삶의 목적을 잊고 (혹은 잃고) 벌레같은 삶을 살거나 혹은 아예 벌레가 되버리는 현실을 보며 아마도 그래서 ‘학대 받는 자들’은 ‘학대 하는 자들’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오. 또한 그것이 출세이고 성공이라는 인식이 뿌리 박힌 듯하고…
그럼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신 선생을 보며 내가 위로 받는 것은 선생과의 교제를 통해 내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음을 느끼는 것이오. 아무리 세상이 힘들다 해도 하나님 안에서 연합한 이들이 온전한 교제를 누릴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 안의 어둠과 부조리는 견뎌낼 수, 아니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오.
한 명이라면 힘들지라도 두 명이면 증거의 능력이 있을 것이고, 세 명이 진정 하나가 된다면 어떤 삶의 무게라도 안정을 잃지 않을 것으로 믿소.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고 말씀하셨는데, ‘안에’의 entos는 ‘안에’ 뜻도 되지만 ‘가운데’ 즉 우리들 교제 가운데 라는 뜻도 되지 않소? 이러한 참된 성령의 교제가 우리 안에 넘치길 기도하오.
주님, 오늘 경신 선생을 복주시되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넘치게 하시며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소서. 오늘도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오늘도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며, 성도간의 참된 교제로 굳건히 설 수 있게 하소서. 동일한 복이 나의 삶 속에도 임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