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 솔로몬은 주어진 짧은 인생을 ‘즐겁게’하고 그 안에서 ‘선한 것’ 즉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비단 솔로몬이 아니라 이제까지 역사를 통해 많은 이들이 무수한 방법을 통해 추구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방법들은 약간의 기쁨과 만족과 보상만 있다.  인생에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짧은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3절 말씀을 살펴보면,

  1.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기 원했다. 쉽게 말해 정신차리고 깨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쾌락을 즐기는.  이런 것은 솔로몬 같이 똑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ㅎㅎ
  2. 그는 자신의 삶 만이 아닌, 천하의 인생에 대해 고민했다. 왕으로서의 삶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주어진 삶에 대한 의미를 고민했다.
  3. 마지막으로 그러한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두는 일을 했다. 영어본에는 ‘내’라는 말이 없어서 단지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두는 방법’을 고민한 것으로 해석했다. 스스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붙잡아 둘리는 없고 아마도 일반적인 삶의 오류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부지 중에 자신이 사실 어리석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문제들을 위해 고민하면서 여러 방법을 동원한 것이 4-7절 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 대해 크레딧을 주는데 그것은 정당한 것 같다.  단지 왕이기 때문에 그가 그런 업적을 거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여러 방법을 통해 성취한 것에 대해 그는 스스로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으로 결론 짓는다.  그의 본질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본질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방법은 잘 될 수가 없다.  그의 본질에는 ‘내가’ 만 있고 하나님은 없다.  ‘나를 위하여’는 있고 '천하의 인생'을 위함은 있어도 ‘주를 위하여’는 없다.

주님은 본질로서 ‘천국’에 대해 여러가지 비유(혹은 유비)를 통해 말씀하셨고 교회는 그 천국을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천국의 본질인 그리스도를 잊을 때 그 어떤 방법도 헛것이 된다.  본질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또 그를 위하지 않는 모든 방법들은 헛되기만 하다.  나의 삶 속에서도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나의 모든 수고는 헛것이라는 고백을 하게 될 뿐이다.  교회도 그렇고 내 삶도 그렇고 방법론 (how) 때문에 본질을 잊을 때가 많다.  안식일에 대해 운운할 때 천국의 본질이신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을 말씀하셨고 사랑을 말씀하셨다.

주님, 부서져야 하겠습니다.  깨져야 하겠습니다.  본질만 남을 때까지 나의 어떠함은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놓지 못하는 ‘나의 지혜’를 놓아야겠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단지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I sought in mine heart to give myself unto wine, yet acquainting mine heart with wisdom; and to lay hold on folly, till I might see what was that good for the sons of men, which they should do under the heaven all the days of their life.

I explored with my mind [how] to stimulate my body with wine while my mind was guiding [me] wisely, and how to take hold of folly, until I could see what good there is for the sons of men to do under heaven the few years of their l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