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서울로 ‘올라간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냥 서울 ‘간다’가 아니라 ‘올라’간다는 말을 쓴다.  그것은 지도상 남한에서 서울이 북쪽에 있는 이유만은 아니라 모든 행정적인 것이 서울에 있고 수도가 서울이기 때문이다.  통일이 되어도 북한의 도시에서 서울로는 ‘올라갈’ 것이다.

누가복음 10:30 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라고 기록하는데 사실 예루살렘과 여리고는 위도상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런데 굳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갔다’ (καταβαίνω)라고 표현했다.  물론 여리고는 해발 -258 미터로 해수면보다 더 낮은 도시인데 반해 예루살렘은 해발 750미터로 꽤 높은 도시이다.  1000미터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런 지질학적인 이유만으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진’ 않는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하나님의 성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고 여리고는 세상과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에 ‘내려간’다. 그래서 강도를 맞았다.

당시 바벨론은 모든 행정과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모든 길은 바벨론으로 통했고 모든 도시에서는 바벨론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유일하게 ‘예루살렘만’은 바벨론에서 올라갔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바벨론의 성공적인 위치에 있던 왕에게 총애받는 에스라는 바벨론 높은 곳에 있었고 예루살렘으로 ‘내려갔’을 것이지만, 성경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기록한다.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가 얻은 결론은 하나님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익숙한’ 이라는 말은 완전히 꽤뚫었다는 뜻으로 정통했다는 뜻일텐데 그것은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인도했고 그러한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주님, 세상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하며 그 모든 것으로 유혹합니다.  거기서 만족과 기쁨과 영광과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손짓합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별 아름다운 것이 없는 예루살렘이 말씀을 소유한 자를 부르는 것을 봅니다.  거기에 참된 만족이 있고 주님과의 만남이 있으며 구원이 있고 참된 의미와 영생이 있습니다.  참 예루살렘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주님께로 올라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