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시대적 순서로 편집되지 않은 책들이 꽤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떠나 추가로 성전을 만듦으로 분리를 조장하고 우상 숭배를 일삼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바벨론을 들어 멸망하게 하신다. 하지만 다시 멸망의 도구가 되었던 바벨론을 얼마 못가 페르시아에게 멸망 당하게 하시고, 허물어진 성전을 재건축하는 역사를 말씀하시는 것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이다. 그런데 그 후의 책인 에스더는 에스라가 성전 건축을 하기 바로 전 사건이다. 그래서 시간상 에스라 전반-에스더-에스라 후반 느헤미야 정도가 될 것 같다.
오늘 말씀은 정말 전률하게 하는 내용인데 드디어 포고 귀환과 성전 재건축의 허가, 아니 명령이 떨어졌다. 신실한 유대인들에게는 정말 얼마나 기다리던 소식이었을까. 이방 왕인 고레스는 어떤 연유인지 그 큰 제국을 다스리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신이시라’고 고백한다. 선정 재건축을 허락하고 바벨론이 빼앗은 기물들을 다시 모두 돌려주며 거기에 따른 모든 경비와 부속국들에 대한 명령을 보니 단순히 립서비스는 아닌 것 같다. 그의 믿음이 신기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레스왕의 명령이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5절에는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라고 말씀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몇 부류의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유다 베냐민 제사장들 레위인들 (즉 혹은 그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들이 포함된 것을 말씀한다. 당시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강제 이주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 중 모두가 선정 건축을 위해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제 이민 사회에 익숙해져 타지에서 계속해서 살기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느헤미야에 보면 강제이주 당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이들도 이스라엘 본국 땅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어떤 이들이 이스라엘 이들인가?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특히 자라나는 2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한국어를 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100%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한류 덕에 예전에 비해서 아이들이 한국어를 많이 접한다. 이민 2세로 시민권자로 미국에 살지만 한국 미디어에 심취된 아이들도 많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들이 과연 한국인일까? 더우기 많은 외국인들도 이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며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을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맥락에서 강제 이주 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성전 건축에 참여하지 않고 이방 땅에 머무른 유대인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백성일까?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분의 백성의 모습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말씀 따라 사는 이들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한국말을 한다고 모두 한국인은 아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면서 나라 팔아먹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말을 못하고 미국 시민권자 혹은 다른 나라에 산다고 해서 한국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운데 사역에 열심인 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이방에 남아 있거나 '본국'에서 허송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에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들’이 쓰임 받는다. 이것은 영적인 리더가 중심이 되겠지만, 아무리 제사장 혹은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1.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2. 올라가서 3.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
주님, 주의 영에 감동받게 하소서. 성령에 충만케 하소서. 내 안에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목적 의식을 주소서. 그것을 위해 ‘올라가게’ 하소서. 행동을 취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