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같이 작은 나라도 왕의 권위에 도전하면 3대를 멸하고, 어지러울 때마다 종묘와 사직을 운운하며 왕권을 강화했었다. 중국이나 역사적으로 많은 제국들 역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질서와 기강이었다. 오늘 말씀 역시 당시 천하를 통일했던 페르시아 (바사)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보면서, 피를 흘려 세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현자들이 모여 내린 결론은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문 해설에는 지방관들과 왕후의 알력다툼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긴 했지만, 21절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는 말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 그들에게는 상식적인 대응이 필요했고 그 시대와 그 제국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필요한 결론이었다.
한 나라가, 특히 제국이 유지되려면 국방을 소홀히 할 수 없고, 한 국가의 국방은 법과 질서에 뿌리를 둔다. 그리고 그 질서는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가정에서 가장이 권위를 가질 때 온전히 유지된다. 더우기 벌써 2500년 전에 있던 이야기니 만큼 당시의 남존사상은 이해할 만하다. 사실 미국에서 조차 여자들이 선거권을 가진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고 미시시피의 경우는 1984년까지 19번째 개정안이 비준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때까지 여자들이 투표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므무간이라는 인물도 재미있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지방관 이름들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바사제국은 의견의 교환이 자유로웠던 것 같다.
그런데 20절이 문제이다. 왕이 조서를 내린다고 과연 여인들이 그 남편을 존경할까? 존경은 마음에서 나와야지 법으로 혹은 계약으로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당시 그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때였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법으로서야 겨우 유지되는 사회.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법으로 유지되는 그 이상이다. 사랑과 희생으로 세워진다. 주님께서 피흘려 구속하시고 그 생명으로 살며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지된다.
예전에 ‘할수 있다 하신이는’ 이라는 복음송 후렴에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희생만이 희생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사랑만이 사랑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라고 되어서 처음에는 도대체 어떤게 진짜 능력이야? 라고 궁금했었다. 하지만 후에 진정한 능력이 바로 믿음이요 희생이요 사랑임을 (적어도 머리로는) 깨닫게 되었다. 희생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요, 믿음없는 희생은 쓸데 없는 희생이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과 희생과 사랑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귀한 덕목이다.
주여, 어제도 참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하지만 오늘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나오려고 할 때, 잠간 멈추고 slow down할 수 있게 하소서. ‘법’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생각하고 의지하게 하소서. 주여!!! 아이들을 구원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