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말하면서 믿음으로 살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 자신도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정작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내 생각과 기준대로 살 때가 너무 많다.

로마서 1:21에는『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씀한다.  종교적인 유대인들도 그렇지만 불신자들 조차도 신적 존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물주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생각하면 내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문란, 마약, 술에 취함 등 여러 쾌락을 위한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레데인은 이방인이었지만 그들 중 할례파가 있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무시하고 유대인들도 지키지 못했던 율법을 지키겠노라고 하는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 즉 할례를 함으로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을 시인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는 열매가 없었고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 (16절) 가 되었다.  타락한 인간의 기질상 무언가 ‘해야’ 하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영적이고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럽다고 했다 (15절).

그레데에서 사역을 하는 디도에게 편지를 하면서 현지 사람들 중 할례파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바울은 말하는데,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린다고 했다.  그런데 할례파는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떤 더러운 이득을 취했길래 온통 가정들이 깨지게 했을까?  당연히 할례를 통한 구원이었고 그것은 율법과 연관이 된다.  즉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말하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동시에 ‘더러운 이득’이라면 종교와 연관된 돈을 의미했을 수도 있고 제사와 관련된 고기와 연관됐을 수도 있다.

그들의 ‘행위’와 가르침은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복음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이방 종교들과 귀신들이 하는 말과 동일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허탄한 이야기’였고 ‘진리를 배반한’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우상 숭배 즉 자신을 믿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어, 우상 숭배의 결과인 성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성적 타락은 온통 여러 가정들을 깨어지게 한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은혜를 거부하면 가정들이 깨어진다.  알아도 그대로 살지 못하면 온통 가정들을 무너뜨리게 된다.  바로 요즘이다. (주여, 주의 여러 가정들을 지키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율법의 행위’ (롬 3:28) 로는 구원받지 못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의 ‘행위’는 그 열매 (마 5:16)다.  마치 잔고 없는 수표를 남발하면 부도내는 범법행위지만, 하나님의 영과 생명을 얻은 이에게는 바닥없는 은행계좌가 주어져서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

내가 이 편지를 쓴 바울이나 받는 디도가 아니라 후에 꾸지람을 받을 할례파였다면 이 말씀을 접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분을 내고 은혜를 아예 무시했거나, 아니면 회개하고 육신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갔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주님, 은혜를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육신의 우월함을 찾게 됩니다.  아니면 찾지 못하고 오히려 허무해지고 우울해집니다.  모든 것들이 허무하고 더럽게 보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거하시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새롭게 보입니다.  오늘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