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없지만 빌라도가 쓴 회고록이 전해지는데, 거기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판하면서 얼마나 주님의 권위에 떨었는지 기록한 것이 나온다. 물론 그 정통성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 총독으로서 생사여부 결정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온화하면서도 위엄있는 모습이 그를 압도함에 떨었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변화산에서의 주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무척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보통 때의 주님의 모습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무시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군인들이 주님을 조롱하는 모습이 나온다. 만약 ‘성화’라는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후광’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렬한 ‘카리스마’ 를 내뿜었어도 그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였다. 자신을 만만하게 보이도록 내 놓으셨다.
만만하게 보인 사람이 하나 더 등장하는데 바로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다. 그가 구레네 즉 현재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 출신이기 때문에 흑인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당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때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그를 잡아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는 사람들 중에 눈에 띠는 외모에 특히 만만하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한다. (물론 완전히 개인적인 추측으로, 당시 흑인은 지금처럼 차별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지는 않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식이지만, 그의 아들은 헬라식 이름인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이민 1세 아니면 현지 사람이 유대교인이 되어 개명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만만하게 보이던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를 나눠지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억지로. 이 ‘억지로’라는 단어는 ἀγγαρεύω (앙가루오) 라는 단어로 ‘억지로 가게하다’ ‘징병하다’ 라는 뜻이다. 징병은 권력있는 자들은 당하지 않는다.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라는 말씀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 즉 오리를 억지로 가게하면 십리를 가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온전히 은혜이다. 만만하게 보임으로 누릴 수 있는 은혜이다.
신약의 3분의 2를 쓴 바울은 로마서 16장 13절에서 이 시몬의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중매자, 영적인 아버지, 교사, 장로, 감독 등으로 말했지만 누구를 자신의 윗 사람, 어머니라고 한 것은 오직 단 한 번 여기 기록한 것 같다. 그만큼 이 만만하게 보이던 사람의 억지로 지는 십자가 사건은 바울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었다.
남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면 솔직이 기분 나쁘다. 별로 자랑할 게 없는 나지만 그래도 남들이 나를 대할 때 함부로 대하면 얼마나 기분 나쁜가… 한동안 오래된 차를 타면서 끼어들기를 당하면 내가 타는 차가 좋지 않아서라고 자격지심으로 생각했었다. 월세 아파트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고 큰 집에 사는 것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으로 남기 원하시는 것 같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만만하게 보여 억지로 무언가를 떠 맡는 것이 복임을 깨닫는다.
주님, 그 많은 군중 속에 선택받은 구레네 시몬을 기억합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힘없고 가진 것 없어 보여 만만하게 보였을지라도 그를 통해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보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만만하게 보이는 나의 모습을 인해 주께 감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