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교황이 방한을 했다. 역시 몇 건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지만, 사실 교황으로서는 응당해야 할 것을 한 것 뿐이었다. 믿는 이로서 혹은 영적 리더로서는 상식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개신교 몇몇 교회가 이제까지 보여준 상식 이하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신교에도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 많은데… 며칠전 홈레스를 먹이고 기도해 준 빌모 집사님도 계신다. ㅎㅎ - 이런 일이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기회는 준비된 이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회이다.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냥 대충 넘겼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물론 그렇다고 모든 홈레스를 항상 도와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 말씀에는 주님과 더불어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바라바라는 강도도 등장하고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 공회, 무리들 등 많이 등장하지만 유독 빌라도라는 인물이 들어온다. 그리고 5절의 그가 ‘놀랍게 여겼다’는 대목이 눈에 띤다.
빌라도는 개인적으로 예수님께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었고, 또 ‘죄수’의 모습으로 넘겨진 주님이 당신 자신을 변호하기 기대했지만 정작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단지 유대인의 왕임에 대해 다시 한번 그렇다고 말씀하셨다. 빌라도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봉왕 헤롯이 있는데 이 자가 지금 이 초라한 모습으로 아직도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너를 살고 죽게할 권세가 있는지 모르느냐? 특이하고 놀랍구나 θαυμάζω (따우맛조)…’
주님을 믿는다며 사는 모습이 몰상식하거나 상식 이하가 되면 큰 문제지만, 상식선만 지켜도 요즘은 칭찬 듣는 때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인들의 모습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식선만 지키려고 하는 것이 사실 율법이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여 들어가고 누리는 천국은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그래서 주님의 산상수훈은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은혜의 말씀이다.
내가 오늘 땅에 떨어진 휴지 하나를 줍는 것이 별로 필요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요즘 상식을 넘어서는 일일 수 있다. 주님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야 한다고 하신 말씀까지는 지킬 수 없어도 적어도 오리까지는 기쁨으로 함께 가 주는 것이 상식선이다. 하지만 십리를 가면 세상은 놀란다.
믿는 이들이 정상적으로 살 때 세상은 놀란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칭찬을 듣거나 희망을 구할 필요는 없다. 결국 예수를 넘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놀랄 필요없다. 요일 3:13에는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말씀하는데, 이 ‘이상히 여기지’ 라는 단어는 위의 ‘놀랍게 여기더라’와 같은 단어 θαυμάζω 이다. 주님의 은혜가 충만해서 사랑으로 세상을 대해도 세상은 오히려 그러한 것에 대해 감사 하지도 않고 오히려 악으로 갚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먹이려는 손을 물어 뜯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한 것에 대해 놀라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나는 놀랄만한 사람인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상식을 뛰어 넘는 삶을 사는 사람인가? 오늘 믿음으로 한번 살아보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