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너무 믿고 기도로 준비하지 못한 베드로는 결국 실패한다. 힘센 군인이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권세있는 관리가 지적한 것이 아니라 여종에 불과한 이의 고소조차 두려워하고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며 마지막은 저주까지 한다. 66절 ‘여종’의 원어는 παιδίσκη 로 ‘나이 어린 여자 노예’를 뜻한다. 당시 사회 구조상 여자는 힘없는 존재였고, 그 중에도 보잘 것 없는 여자 노예가 베드로의 앞 길을 막는 것 같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당신을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신을 너무 믿어서 그런 일을 없을 거라고 확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보잘 것 없는 여종이 그 시험의 도구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삶 속에서도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때는 세계 평화니, 교회 통합이니, 신학적 입장 차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들이 아니라 나중에 돌아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문제로 인해 실패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불평했던 때도 많았던 것 같다. 마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내가 조심하지 않았던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돌부리가 거기 있었던 것에 대해 저주하는 식이다.
그것이 영적인 문제에 대해 영향을 준다면 그 실망감과 분노는 더 하다. 만약에 내가 베드로였다면 후에 그 실패에 대해 ‘아, 그 여종만 아니었더라면..’ 하고 힘 없는 여종을 탓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어디 여종의 문제랴. 나의 문제이다.
베드로의 울음은 아마도 그의 믿음이, 주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한낱 비천하고 힘없는 여종보다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울음 같다. 주님과 3년 동안 함께 다니고 모든 기적을 바로 옆에서 보고, 변화산에서도 함께 하고, 생명의 말씀을 그 누구보다도 더 가까이 듣고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의 믿음이 어떠했음이 작은 여자 아이를 통해서 폭로된다. 그래서 너무 슬픈 울음이다. 하지만 그 때의 그 아프고 부끄러운 실패에 대해 부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회복하게 해 주신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신다. 베드로가 실패해서 가슴아파 울었어도 그 실패에 대해 여종을 탓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의 이 실패의 기억이 후에 베드로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같은 단어를 쓴 행 12:13에는 ‘여종 로데’의 얘기가 나온다. 요한 복음에는 베드로를 지적한 여종이 ‘문 지키는 여종 (요 18:17)’이라고 나오는데, 이 여종 로데도 문과 관련이 있다. 베드로가 살아 돌아온 것을 문을 열지도 않고 그의 목소리만 듣고 기뻐서 사람들에게 말하러 간 앙증맞은 귀여운 여종이다.
신기한 것은 보통 이런 미천한 여종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데 이 로데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은 것을 보면 그는 베드로를 위해 정말 순수하게 믿고 기도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베드로가 이 나이 어린 소녀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대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보잘 것 없는 여종의 지적으로 시험에 실패한 베드로는 그 과거실패의 경험을 온전히 극복하고 비슷한 여종인 로데를 사랑으로 극진히 대해준 것 같다.
주님, 한 때 나를 시험에 들게 했던 사람들을 이제 다시 한번 더 내 마음 속에서 용서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주님이 오늘 말씀을 통해 권하시는 것 같네요. 그들이 신학적으로 나와 같지 않건, 또 나에게 어떤 실망을 줬던, 혹은 그들 때문에 나의 치부가 드러났건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심같이 나도 그들을 마음 속에서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머 극진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