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욕먹는 이유는 선민사상 즉 자기들만 하나님께 택함 받았다는 배타성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그 이유는 이스라엘만 구원받고 그들만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온 세계가 복 받는 것이 목적임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서도 교회는 특별한 것이고, 믿는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고 왕같은 (왕적, 왕족) 제사장들인데, 그러한 것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만 이해되면 큰 문제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구원은 은혜이며, 나의 나된 것도 은혜라고 말씀한다. 어떤 교회가 자신들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선뜻 이단을 생각하게 되지만, 천주교가 그랬고 (아직도 그렇다), 장로교가 그랬으며 (물론 드러나게 하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많이 그랬던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나름대로 반대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거룩함’ 혹은 ‘분별됨’은 분명 귀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남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갖게 되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남들과 담을 쌓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 다른 이들은 우리가 왜 우월한지 증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 자체가, 나의 선민사상에 입각한 우월감이 일치하지 않으면 나는 위선자가 되며 또 하나의 바리새인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제자삼은 이들을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온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이들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많은 때 교만했고,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서 정치적 위치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몇을 선택해서 세우시는 이유는 그들만이 잘먹고 잘살고 은혜 많이 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처럼 썩는 밀알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을 온전히 전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은혜가 미칠 수 있기 위함이다. 우월감 보다는 사명감이고 감사함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들이 좋다고 여겨온 전통을 더 중시했다. (8절) 구약을 보면 손을 씻는 규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제사를 위한 것이고 식사 때마다 손을 씻으라는 규례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위생상 좋은 것이라서 그렇게 전통이 생긴지는 모르지만, 종교성이 강한 유대인들은 그러한 ‘권유’조차 ‘규례화’ 해버렸고 그것을 통해 그렇게 하지 않는 이들을 업신여겼다.
이런 면에서 나 개인적인 삶도 그렇지만 많은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들이 과연 성경적인가, 하나님 말씀에 입각한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렇게 해 왔으니 그냥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왜 ‘강대상’ 앞에 촛대가 있으며 읽지도 않는 성경을 펴놓으며, 성가대는 왜 있어야 하며 등등… 물론 이러한 것들에 대해 자유한 교회들도 이제는 많이 생겨났지만, 내가 자라날 때 ‘교회’의 데코레이션은 항상 이래야 했다.
10-13절 말씀을 보면, 단지 부모를 공경하는 문제 이상으로 주님은 ‘관계’를 설명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자신의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굴속에 들어가 도닦는 것이 아니고, 주위 사람들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과 바른 관계,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인간의 전통은 손을 씻어야 하고 안 씻으면 왕따 당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손 씻겨 주는 것이다.
시오니즘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것이지만, 결국 그것은 유대인 운동이다. 은혜시대의 믿는 이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인데 어떤 이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목숨을 건다. 저급하게 표현하자면 주식 하나도 없는 사람이 주식시장의 동향에 대해 열을 올리는 것과 같다. 쓸데없는 일이다. 물론 거시경제 속에서 주가지수는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내 삶 자체에 대해서는 별 상관이 없다. 비본질이다. 본질은 주께서 허락하신 내 상황에서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주님처럼 나도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 (이것은 주님의 구속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개인적인 헌신이다. 내가 한 알의 밀알이 된다고 세상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
주님, 주께서 주신 자유함은 육체의 기회를 삼을 정도로 강한 것이고, 더우기 내 육신은 주님보다는 세상적이고 육적인 것을 사랑하지만, 오늘 나의 종교성을 내려놓고 나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택함받은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가족과 친지, 믿음의 형제들,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