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쯤 풀러에서 공부하던 때 당시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때 많이 회자되던 얘기가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말이었는데,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양면성에 대해 유학생 무리가 놀라워하며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아닌게 아니라 주님이 오심으로 천국은 이미 이 땅에 임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지만 아직도 이땅은 부조리와 악이 가득차 있다. 그래서 이미 임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오늘 또 씨 뿌리는 비유를 다시 한번 들어 말씀하신다.
이미 천국의 씨는 뿌려졌지만 그것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전에는 어떤 씨앗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가라지도 생겨나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차면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이 씨앗은 우리의 열심으로 크는 것이 아니다. 27절에는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시며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자고 있는 중에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는 신비한 것임을 말씀한다.
예전에 김세윤 교수가 쓴 소책자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과연 그렇다고 동의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우리의 열심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열심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닌,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를 준비시킨다.
그런데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라는 24절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원어를 찾아보았다. ‘헤아림’이라는 단어는μετρέω (메트레오)라는 단어인데, 영어의 meter 즉 미터법의 미터의 원어로 ‘측량하다, 판단하다, 예측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원어구를 보니 후반의 ‘더 받으리니’라는 것에 대해 더 자세하게 나왔다. 즉 ‘듣는 자는 더 받으리니’라는 뜻이다. 이 ‘더 받으리니’는 προστίθημι (프로스티띠미) 라는 단어로 ‘추가하다 더하다’라는 뜻이며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에서 “더하시리라”와 같은 단어이다.
로마서 10장 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무엇을 듣든지 그것이 우리에게 정보가 되며 가치관이 되고, 그것을 통해 측량 판단 예측 등을 하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 정보와 가치관을 넘어서 우리에게 생명이 되어 씨처럼 ‘스스로 (28절)’ 자라서 싹 이삭 곡식으로 성장한다.
주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고 받고 믿게 하소서. 믿음을 주소서. 주님의 말씀을 받을 때 주의깊게 받게 하소서. 생명을 받는 듯이 받게 하소서. 왕의 칙령을 받는 듯 받게 하소서. 무릎 꿇는 마음으로 받게 하소서.
왕께서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