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권과 행복추구권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이해가 다르고 기준도 다르며 행복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는 결국 ‘쾌락’으로 이어진다. 오늘 말씀 2:17절과 3:5절은 그러한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님만을 나의 행복과 만족으로 여기는 것은 얼마나 쉽지 않은가…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좋게 보이고 그래서 ‘여호와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잘사는 사람은 뭔 이유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되고 원하는 것을 누리며 산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그의 백성을 사랑으로 회복하시는데, 그 목적은 내일 구절인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십일조도 거론하신다. (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에 배운 ‘난 난 난 난 나는 왕자(공주)다 하나님 나라의 나는 왕자(공주)다’ 라는 노래의 가사는 믿는 이들의 정체성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동화속의 왕자나 공주가 사는 삶을 살게 허락지 않으신다. 오히려 왕자나 공주의 의무를 더 깨우치게 하신다. 동유럽에는 ‘김태희가 소 젖짜고 밭 매는’ 나라들이 많다고 하지만, 믿는 이들이 바로 공주와 왕자의 신분으로 소 젖짜고 밭 매는 이들이다. 우리들이 공주와 왕자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면 좋겠지만, 세상적인 인권이나 행복추구권이 아니라 주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는 것을 원하신다. 그리고 그것이 참된 회복이다.
주님, 주님의 나라는 회개해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임을 압니다. 계속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관으로 주님의 나라를 바라고 이해하려는 어리석음을 그치게 하시고 내 안의 정욕과 야망을 내려놓게 하소서. 주님 만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