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 1:1에서는 ‘하나님의 경고’라고 말씀했다.  사실 영어본에서는 ‘경고’라고 쓰인 곳은 없고 다만 ‘말씀’ 혹은 ‘신탁’ 아니면 ‘엄중한 말씀’ 정도로 번역했다.  하지만 한국어 번역본에는 ‘경고’라는 말을 굳이 썼는데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사실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에 대해 썼다.  오늘로 말하면 목사나 신부 정도가 되겠다.

 

미국 내 목회자들의 75% 이상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아래)  이러한 사실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비슷하다.  목회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명 또는 소명 의식이 없다면 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것이 목회일 것이다.  문제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술수나 다른 것을 의지하게 될 때도 있고, 목회는 단지 ‘직업’으로 전락해 버리고 삶이 예배가 아니라 ‘쇼맨십’으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목회자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라면 하나님도 사람도 그들에게 특별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딜레마이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믿는 모든 사람들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한다.  직업적인 목회자가 아니라 모든 믿는 이들이 전도며 다른 이들을 영적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믿는 이들은 주님 제자들이며, 참된 제자는 다른 이들을 제자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드림’과 ‘무엇을 드림’ 그리고 예배에 대한 문제가 야기된다.  구약은 성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제사장 레위인 등 직업적인 종교인들이 필요했고 거기에 맞는 예물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모든 믿는 이들이 제사장이고 삶 자체가 예배이며, 하나님이 받으실 오직 하나의 제물은 그리스도 이기에 ‘교회 건물’을 ‘성전’으로 대치해 버리고 '헌금'을 '제물'로 만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오늘날 기독교가 앓고 있는 심각한 병증과 그 후유증의 뿌리는 신약의 주님을 버리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지키기 힘들었던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육적인’ 욕망 때문이다.

 

주님, 목회자이건 소위 평신도이건 모든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고 안식해야 하며 자신의 어떤 것으로 주님께 드릴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하소서.  오직 참된 제물, 받으실만한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취하고 그 분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래-

미국 내 80퍼센트에 해당하는 목회자들이 목회사역이 자신들의 가정들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33퍼센트의 목회자들이 답하기를 목회사역을 감당하는 일이 자신들의 가정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라고 답하였습니다. - H. B. London Jr. "Pastors at Greater Risk"

  1. 75 percent report they've had a significant stress-related crisis at least once in their ministry. 1. 75퍼센트의 목회자들이 응답하길, 최소 한번 이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성 위기를 그들의 사역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2. 50 percent feel unable to meet the needs of jobs. 2. 50퍼센트의 목회자들은 사역의 필요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3. 90 percent feel they're inadequately trained to cope with ministry demands. 3. 90퍼센트의 목회자들은 그들은 사역적 요구사항을 처리하기 위해서 적절히 훈련되지 않은 것 같다고 응답하였습니다. 4. 25 percent of pastors' wives see their husband's work schedule as a source of conflict. 4. 25퍼센트의 목회자들의 아내들은 그들 남편 사역자들의 사역일과표가 어려움을 일으킬 요소로 보여진다고 응답하였습니다. 5. Those in ministry are equally likely to have their marriage end in divorce as general church members. 5. 목회자들 역시 일반성도들과 거의 동등하게 그들의 결혼이 이혼으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6. The clergy has the second highest divorce rate among all professions. 6. 모든 전문직종 분야 중에서 목회자들의 이혼비율이 두번째로 높습니다. (Source: Pastors at Greater Risk, H. B. London Jr's)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했다’라고 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라고 반문한다.  마치 여자가 남자에게 ‘다른 것 다 필요없어. 나만 사랑해 주면 돼’라는 말을 하지만 나중에 ‘언제 나를 사랑했어?’라고 말하거나 혹은 자식이 부모에게 ‘언제 나를 사랑했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남과 비교함에서 오는 것일 수 있기에 하나님은 그 비교의 대상으로 에서를 언급하시며 에돔은 영원히 진노받은 백성임을 말씀하신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남이 자기보다 못되는 것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는 이임을 아는 것은 조금 더 ‘고소한’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남이 못되는 것 만큼 자신이 잘되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두 족보를 보면 신앙인의 족보는 별 그렇다할 업적보다는 단지 ‘누가 누구를 낳고’로 끝난다.  반면에 불신자들의 족보는 대단하다.  여러 가지 기계나 병기를 만들고 계발하고 음악과 악기도 고안해 내는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들, 고대의 용사등을 기록한다.

대형 교회를 이룬 목회자들의 성공담이나 비즈니스로 큰 성공을 거둔 이의 간증 등 하나님의 사랑 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런 익사이팅한 간증이 전혀 없고 평생 묵묵히 자신의 믿음을 지켜가는 이들은 정작 스포트 라이트를 받지 못한다.

오늘 말씀 1절에서 ‘경고’라는 단어가 사용됐는데, 사실 원어는 그냥 ‘말씀’ 혹은 ‘신탁’이다.  아마도 6절 이하 경고의 말씀 때문에 그런 단어가 사용된 것 같다.  하지만 ‘경고’라는 단어와 다음 절 ‘사랑’이라는 단어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사랑함으로 경고할 수 있지만,

보통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의 성품이나 능력이 그렇지 못한 가정적 배경의 사람들의 것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만, 가끔 매우 혹독한 가정환경을 가지고도 훌륭한 인물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것은 대게 한 사람의 헌신적인 사랑과 인정을 통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의 지극 정성한 사랑으로 올바른 교육을 받았거나, 학교 선생님의 관심과 인정을 통해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한 경우이다.  이런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 모든 환경적으로 힘들었던 요인이 오히려 그들을 성장케 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와는 반대로 평범하게 일상의 많은 도전을 받으며 사는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도 가끔 그 사랑에 의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