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은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러하신 분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간증한 내용이다. 삼하 22장은 도입부 한절 빼고는 모두 시편과 흡사한데, 오늘 말씀 부분은 그러한 ‘나의 전능하신 하나님’ 때문에 나의 믿음이 어느샌가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을 본다. 믿음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이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은밀한 어떤 것이지만, 믿음 자체가 개인주의적으로 되어 버리고 자아중심적으로 되어 버리면 문제가 있다.
그래서 로마서 1:7에서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한다. 물론 이 말씀을 달리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믿음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본질적인 생명의 어떤 것으로의 혹은 하나님께 속한 어떤 신성한 것으로의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개인적인 믿음' 조차도 주님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바울은 오늘 자신의 믿음이 개인적인 면의 어떤 것으로는 잘 고백하고 증거했지만, 이제 나이들어 늙어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도 자기 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리고 또 나를 보는 것 같다.
다윗은 평생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또 22절에서 28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기도 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이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을 안다. 결국 그는 24장에서 또 다시 무서운 죄를 지어 많은 백성들을 죽게 한다.
믿음의 단계는 첫째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나의 그 믿음이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의가 완전히 없어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는 것이다.
주님, 나는 도무지 소망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만 답이고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만이 길임을 고백합니다. 침례는 한 번의 의식이 아니라 날마다 경험해야할 것임을 알게 하시고, 오늘 이 아침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소서. 주님의 어떠함만이 나를 살리고 나의 참된 의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