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이제 다시 왕으로 귀환한다.  시므이와 시바도 용서하고 므비보셋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그의 재산을 시바와 나누라고 한다.  다윗의 이러한 결정이 정확히 왜 인지는 모르지만 시바에게도 재산이 필요하다고 느꼈든지 아니면 이번 기회에 기회주의자 시바에게 재산을 좀 줌으로 그가 므비보셋과 더 얽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전에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모든 것을 주노라고 했던 말을 뒤집어 이제 밭을 나누라고 한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재산을 전부 시바에게 주라고 하는데, 그가 원했던 것은 왕의 귀환, 왕의 임재이지 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므비보셋과 유다백성들의 차이를 본다.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사람으로서의 왕이 필요했던 유다 백성들과는 달리 므비보셋에게는 왕 자체가 자신의 재산이요 위로요 만족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하나님을 자신의 다른 필요를 위한 존재로 전락시켜 버리는 이들이 많다.  직장, 배우자, 건강, 물질 등을 위해 구하다가 얻으면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이들이다.  이제 후로는 더 이상 시바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21장에는 므비보셋의 이름이 한번 더 거론 되면서 다윗이 ‘아꼈다’라고 말한다.  왕이 아끼는 이, 므비보셋.  그는 왕의 재림을 기다린 사람이었다.

주님의 재림을 잘못 기다려서 그 원인이 영적 이기심이나 혹은 현실 도피로 나타난다면 문제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는 형편을 따지자면 세상적인 판단으로는 므비보셋처럼 조금 구질구질 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때 그들은 ‘아낌’ 받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세상 재산은 필요 없어진다.  주님이 그들의 영광이고 위로고 만족이고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면류관을 벗어 던진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계 4:10)

주여,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을지라도 주님을 기다리며 인내하게 하소서.  므비보셋처럼 왕의 귀환을 기다리며 다시 왕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사이가 되는 것 처럼 우리도 그 날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귀한 이들로 변함 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