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다스려야 하는데 오늘 다윗은 또 쫓기고 있다.  예전에는 사울에 의해, 오늘은 압살롬 왕자의 난에 의해 쫓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있음에도 성경은 15절부터 21절까지 계속해서 다윗의 이름을 쓰지않고 왕이라 말한다.  왕으로서 쫓기는 상황에 놓여도 그의 신분은 왕이다.

다윗은 이번 상황에 대해 압살롬에 대적하지 않고 그냥 피하는 길을 선택한다.  역모인데 그냥 피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다윗은 이번 일이 그의 죄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모든 신하들과 주위 백성들은 그를 따른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잇대와 그의 600명이다.  과거 자신이 600명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광야를 전전하던 일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는 잇대가 반갑기도 했었겠지만 한 면으로는 착찹했을지도 모른다.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상황에 쫓기던 그 옛날을 상기하게 하시는구나.  그냥 쫓기기만 했더라면 ‘아, 왕이 이게 무슨 꼴이람…’ 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600명이 앞에 나타나니 ‘아, 내가 또 쫓기는구나.’ 하고 좀 더 뒤돌아 보며 상기할 수 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과거의 죄와 실패를 상기시키고 해결함 받기 위함이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기 싫은 것, 다시 돌아보기 싫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것들을 대면하게 하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유함 받기 원하신다.

그러고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성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주님께서 죄지은 자에게 ‘너의 어릴 때 상처가 심했구나, 너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라고 하신 것을 보면 꼭 그런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나 ‘쓴뿌리’에 대한 내적치유 등을 하시진 않았지만, 과거의 상처나 죄에 대해 대면하고 그것을 해결함 받는 것은 베드로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 같다.

어제 아내와 부부 사이의 문제에 대해 대화했다.  둘 사이 친밀감 부재에 대한  문제 그리고 나의 어릴 적 상처 등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기 싫어한다.  첫째는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둘째는 그러한 이야기를 대면하기 싫었고 셋째는 벌써 몇번 ‘내적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다룬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문득 문득 과거 죄나 상처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단지 주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해결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의 행동에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온전한 해결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심리치료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프면 하나님께 기도만 하지 않고 병원에도 갈 수 있는 것 처럼 카운셀링이나 심리치료도 비성경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실 그러고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도 성경에서 많은 것들을 가져온 것 같다. 단지 세상적인 관점으로 각색했기 때문에 ‘성경적’이지 않다고 해서 나는 그러한 접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그러한 것을 맹신하는 것과 또한 ‘자유함’을 얻는 것 자체를 목표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놓고 기도하며 그것에 대해 자유함을 구했지만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며 거기에 대해서는 계속 놓임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함은 필요하지만 그 자유함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이다.

정죄와 죄를 생각나게 하심은 정죄가 그 목적이 아니라 용서와 관계 회복이다.  또 사역을 부여하기 위해서 혹은 재신임 하기 위해서다.  베드로가 자신의 실수로 의기소침하고 있을 때 주님은 먼저 오셔서 베드로가 자신의 실수를 대면하고 그 문제에 대해 주님에게 다룸 받게 하시고 다시 소명을 받게 하셨다.

주님, 과거의 상처로 부터 쫓기는 삶, 현실의 바쁨에 쫓기는 삶, 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쫓기는 삶, 이러한 것들로 부터 자유함을 얻기 위해 주님을 좇는 삶 살게 하소서.  주님의 손에 있으면 나의 과거의 상처와 죄와 실패들이 새롭게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이제 오늘 삶 속에서 상처로 인한 가시가 나오지 않도록 내게 은혜를 더하시고, 왕으로서의 신분을 잊지않게 하시고, 그러한 상처를 받은 나와 주위 사람들을 보듬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