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사람들을 이끌 때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항상 같은 모습으로 인도하면 사람들은 안도하고 질서있는 모습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다.   우리의 참된 리더이신 하나님도 항상 변하지 않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약 1:17)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히 13:8)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난 것 같다.

왜 밧세바를 통해 낳은 첫째 아들은 치시고 둘째는 사랑하셔서 이름까지 지어 주셨는가?  그리고 찾아 보면 그 여디디야라는 이름은 여기 단 한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계속 다윗이 지은 솔로몬이라는 이름만 나온다.  그럼 도대체 왜 지어주셨나?  그리고 또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다.  아… 다윗을 좀 더 혼내주시는 게 옳은 것 같은데 (그런데 나에게 사실 위로가 된다) 오히려 복을 주시고 나중에는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고 그 찬란한 성전을 건축하며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게 한다.  무엇을 배워야 하나? 

호세아 6장 3절의 개역본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개정역에서 ‘일정하니’가 ‘어김없나니’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은 그냥 그대로 항상 똑같이 되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그래서 영어번역본을 찾아보니 좀 더 이해가 된다.

Let us try to know the LORD. He will come to us as surely as the day dawns, as surely as the spring rains fall upon the earth."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Then shall we know, if we follow on to know the LORD: his going forth is prepared as the morning; and he shall come unto us as the rain, as the latter and former rain unto the earth.

위의 세가지 번역본을 보면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주님을 인정하자’ ‘계속해서 따르자’ 등으로 나오고, 주님의 일하심은 새벽이 찾아오는 것 처럼 그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은혜를 바라보자 라는 뜻이 된다.  즉 하나님의 은혜 베푸시는 면에서는 항상 변함 없으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일하시는 방법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더 알아야 한다…  우리 삶은 우리의 바람이나 예상대로만 되지 않는다.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한달 밖에 남지 않으셨다고 한다.  우리는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전 7:14)

"리더가 사람들을 이끌 때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항상 같은 모습으로 인도하면 사람들은 안도하고 질서있는 모습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창조성은 결여된다.  생명력은 적어진다.  결국 리더와의 관계보다는 그 리더로서의 기능면이 중시되고 나중에는 리더가 필요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주하는 삶보다는 역동적인 삶 살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 것 같다.

큐티 말씀을 보니 다윗의 첫째 그 이름 없는 아이가 죽은지도 벌써 적어도 1년, 아니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시기를 통해 다윗은 계속해서 뉘우친 것 같다.  성경에는 찾아볼 수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디서 듣기론 베개가 썪을 정도로 울며 회개했다고 한다.  그 회개하는 기간 주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죄의 통로였던 같은 여인을 통해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  하나님의 일정하심은 그 일하시는 방법면이 아니라 은혜 베푸시는 면이다.

그러고 보면 믿음이라는 것은 율법처럼 어떤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운동력있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사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다.  요한복음 3장 8절에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라고 말씀하시며 성령 하나님의 ‘종잡을 수 없는’ 면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영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니고 우리의 기대나 계획대로 움직이셔야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의 변함없는 계획이 있으시고 우리의 실수나 잘못이나 죄가 그분의 어떠하심과 일을 이뤄가심을 좌지우지하지 못한다.  삐져봐야 우리 손해다.  오로지 겸손함으로 주님의 일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한다.

주님, 육에 익숙한 제가 영을 따라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주님을 따르고 성령에 민감하고 은혜를 기대하게 하소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주목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