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이 세상이 얼마나 서로 믿지 못하고 약속을 저버리는지, 그에 대한 계약과 소송이 끊이지 않고 거기에 들어가는 금액만도 천문학적이다. 일하는 열심과 결과 혹은 만들어지는 상품에 비해 계약과 소송에 낭비되는 돈이 오히려 더 들 때도 있다. 이런 상호간 불신은 국가마다 군비를 증강하게 하고 개인들 사이에서는 일을 할 때마다 계약과 보증인과 보증금을 마련해야만 일이 되게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보거나 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약속을 말로만 해서는 지키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죄인들 가운데서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때가 많다.
오늘 다윗이 ‘죽은 개’같은 므비보셋을 위해 요나단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보며, ‘개같은 죄로 가득한’ 우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을 생각한다. 다윗에게 불려나간 므비보셋은 혹시라도 다윗이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다윗의 본심은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려는 것이다 (3절). 마찬가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나의 뼈속까지 꽤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은 죄덩이인 나를 가만 두실리가 없다. 그러나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위해 피흘려 모든 것을 지불했으니 너는 자유하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라고 약속하신 주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며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신 약속도 지키실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바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사울의 시종인데, 개인적으로 보면 사울의 집은 끝났고 그래서 모든 소망이 끊어진 인물이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모든 땅과 소유를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면서 그 땅을 시바와 그 가족과 종들에게 의탁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산물로 주인인 절름발이 (두 발을 다 절어도 절름발이인가? 뭐라고 해야하지?) 므비보셋을 섬기도록 했다. 그런데… 사실 므비보셋은 다윗과 더불어 왕족들이 먹는 상에서 함께 먹는다. 더구나 그 넓은 땅에서 나는 소산을 므비보셋 혼자서 다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그 혜택은 고스란히 시바와 그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땡잡았다. 법적으로는 므비보셋 소유지만 그것을 누리는 것은 시바와 그의 가족 그리고 종들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왕족된 믿는 이들은 만유를 소유하신 분을 따라 함께 만유를 소유한 자들이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있고 우리는 법적인 후사로서 그 분의 모든 것을 누린다. 세상에서 잘나가고 소유가 많아 보이는 시바같은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아… 돈이 좀 더 있으면 여러 문제가 해결될텐데… 하지만 정작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의 식탁에서 먹는 사람임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세상 살 때는 두다리를 절지언정, 불신자들이 소유한 많은 것들의 법적 실소유주임을 잊는다. 이 세상의 시스템은 공중권세 잡은 자 밑에 있지만, 그 실소유주는 주님이시다. 또 우리이다.
주님, 오늘 당당하게 실소유주이신 주님과 더불어 만유를 주 앞에 굴복시키는 삶 살게 하소서. 후사로 세우신 언약의 말씀을 지키시고 이행하시는 우리 왕 예수를 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