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3절에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이라는 말씀이 있다.  율법이 연약한 것인지 아니면 육신이 연약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맥으로 봐서는 율법이 연약하다고 하는 것 같다.  앞장에서는 율법이 선하고 의로운 것이지만 (롬 7:12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여기서는 율법이 연약하다고 한다.  연약하다는 말은ἀσθενέω (스트롱 G770)을 써서 ‘약하다, 힘이 없다, 보충이 필요하다, 아프다’라는 뜻이 있다.

왜 율법은 연약할까?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절에 보면 첫째 율법의 원래 발생 이유가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나왔고, 둘째 한 중보자(모세같다)의 손으로 베풀었으며, 셋째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라는 유통기한이 있다.  그리고 20절에는 그 중보자는 한편만을 위한 자가 아니나, 즉 양쪽 모두를 상대하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말을 한다.  무슨 말일까?

우스갯소리로 유대인들은 만나서 말하다 보면 계약서를 꾸미기 시작한다고 한다.  율법은 계약서 같은 것인데, 즉 양방이 같은 위치에서 같은 내용으로 같은 조건을 가지고 약속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부터 율법의 연약함이 드러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로서 모세가 끼어서 율법이 들어왔지만, 인간은 그 율법의 요구를 알지 못했다.  결코 하나님과 같은 위치 같은 내용 같은 조건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 법을 통해 무언가 하나님의 기준에 다달아 보겠다고 한 것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율법은 사실 죄만 드러낼 뿐 약속하신 자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밖에 유효하지 못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으로 언약하신다.  율법은 연약하나 언약은 우월하다.  하나님 자신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끌어 가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deal을 하신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언약을 세우시고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는 악수와 같아서 한 사람이 손을 놓으면 그 관계는 깨진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믿음의 언약은 손목을 잡는 것 같아서, 사람이 그 손을 놓아도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손목을 계속 붙들고 계신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 말이 우리가 하나님을 맘대로 떠나거나 무시하거나 해도 된다는 말로 이해하면 문제가 있지만, 그 언약의 탁월성으로 이해한다면 큰 위로가 있는 analogy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언약은(롬 4:13)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고(요 1:12) 오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12절) 한다. 이 언약은 모든 이에게 적용가능하고 (28)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들로 성장하게 한다. (29)

아…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 그의 똑같은 생명을 얻고 자라서 예수님같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성장하게 하는 비밀이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이시지만, 이제 주님은 ‘맏아들’이 되셨다. (롬 8:29)

주님, 이 아침에 주의 언약의 우월성을 찬양합니다!  율법의 그 치명적 연약함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원래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아브라함의 씨가 나타나셔서 우리로 다시 믿음으로 말미암는 언약을 취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자라나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옷입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