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이다. 즉 대부분 이방인들로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어떤 의미일까? 아브라함은 택하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의 시초이다. 하지만 갈라디아서를 읽는 사람들은 이방인이다.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8절에는 모든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받는 복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과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은 무엇이며 그것은 이방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이며 또 하나님의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실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은 신약의 복음과는 깨나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복음이 전해졌다고 말한다. 내 기억으로는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은 땅을 얻고,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을 거라는 것만이 부각되어 생각난다. 그리고 물론 그는 동시에 물질적인 복도 받았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있는가? 사실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이방이 복을 받는 것은 많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러고보면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의 가문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 바탕은 믿음에 의한 의이고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육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도 있지만, 영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된 이들도 있음을 말한다.
지금처럼 신약이 완성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시절, 아무래도 성경은 구약을 위주로 읽혀지고 연구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역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진 모세 5경의 내용을 이방인들도 주로 많이 배웠을 것이며, 아브라함의 중요성 역시 부각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어느 부분이 이방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바울은 '믿음에 의한 의'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의 시초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의 내용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시대에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사실 후손이 큰 나라를 이루고 여러 민족이 그를 인해서 복을 받는다는 말씀은 내가 만약에 아브라함이었다면 별로 흥미가 갈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히 11:13, 개정)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말하며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그들의 받은 복에 대해 모두 다 이해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이 얼마나 큰 일인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게 바울은 다시 한번 복과 복음에 대해 말하면서 그 기초는 율법이 오기 훨씬 이전 아브라함이 받은 믿음에 의한 의로 말미암은 복임을 상기시킨다.
율법에 의하면 이방인들은 철저히 배척되었고, 성전에서도 이방인의 뜰 외에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 훨씬 이전의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은 모든 이방에게 전해지는 복음이 그 목적이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온 세상과 인류에 퍼지게 되는 복음의 시작은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되었으며 모든 이방인들이 받고 누릴만한 복이다. 그리고 그 복은 죄에서 구속함을 입어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그 분을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다.
주님,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희미하게 주어졌던 복음이 이제 온전히 뚜렷하게 나타났음을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 같이, 우리가 주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고, 매일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서 주님의 모든 복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