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때문에 어제밤 잠을 설쳤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것이 하나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데, 그 벌어졌을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 아찔하고, 갇혀서 생사 확인도 되지 않는 이들이 겪었을 (아니면 겪고 있을, hopefully) 고통을 생각하면 그 고통이 내게도 오는 듯 하다. 정작 이번 사건으로 엑소라는 아이돌 그룹이 컨서트가 취소됐다고 욕하는 이들도 많다고 들어서 세상엔 역시 개념없는 이들이 많이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적지 않은 손해를 입을 것을 알고도 취소를 결정한 기획사에 경의를 표한다.
오늘은 수난일 혹은 성금요일로 불리는 날이다. 많은 이들이 특별하게 생각해서 금식을 하거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날이다. 매년 돌아오는 날로 주님의 죽으심을 되뇌어 보지만, 사실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은 일년에 한번이 아니라 매번 모일 때 떡을 뗄 때 마다 기억하는 것이다. (고전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의 부활 사건은 부활절에만 특별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매일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고, 또 이제까지 주위 많은 사람들이 숨을 거둔 것을 봐왔지만,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주님의 태도이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주님은 지체하셨다. 결국 나사로는 죽고 주님은 눈물을 흘린다. 이상하다. 눈물을 흘릴거면 죽기 전에 가서 고치셨어야 했다.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요 11:36)”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주님이 흘리신 눈물의 의미는 나사로가 죽어서 불쌍하거나 슬퍼서 우신 것은 아닌 것 같다. 앞의 33절에서는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라고 기록하는데, ‘불쌍히 여기사’에 대해 영어 번역은 ‘was troubled’로 되어있다. 주님이 흘리신 눈물은 결국 온 인류의 약함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생각하며 우신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부활이 있음을 모르는 이 불쌍한 인생들에 대해 통분히 여기신 것 같다. 마치 ‘너희가 나사로 때문에 분하고 슬퍼하느냐? 너희도 언젠가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다는 것은 분명 힘들고 슬프고 분한 일이다. 별 관계도 없는 이번 일에 나 역시 너무 가슴이 아픈 것을 보면 정작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들고 분할지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의 눈물로 배우는 것은, 한번 죽는 것은 인간에게 정해진 것이다(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나 모두 죽는다. 휴거 사건을 겪지 않을 거라면 한번 죽는 것은 피해갈 수 없다. 지금도 소아병동에서는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고, 병들어 죽는 아이들이 전세계적으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죄인된 인간의 운명은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죄인된 인간의 그 원인인 ‘죄’를 단번에 해결하시려고 그는 아버지 하나님께 버린 바 되었다. 그 누구도 주님의 구속의 죽음을 대신할 수도, 다시 할 수도 없다. (그러고 보면 천관웅 목사의 '밀알'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매우 악한 것이다) 이미 주께서 단번에 이루셨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통분히 여기며 울지 않아도 된다. 죽음 후에는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주님의 부활의 위로와 소망이 있기를…
주님, 내 안에 주님의 부활이 더욱 선명하고 뚜렷하게 살아있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주님 외에 두려운 것이 없게 하시며, 이 부활의 소망을 나누게 하시며, 특히 세월호 실종자와 사망자, 그리고 그 유족들이 주를 믿음으로 부활 신앙으로 이 힘든 시간을 이기게 하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