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장 10절에서 주님은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지도자'라는 말이 한자로는 '가리키고 (방향을, '가르치고'가 아니라)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teacher, master, leader, director 등의 뜻이 되는데, 헬라어에서는 καθηγητής (스트롱 2519)를 써서 leader, teacher, guide 등으로 번역된다. 주님은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분만임을 상기시키시면서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조직이 생기고 사역을 함에 있어 분명 우리 중에 한 명 혹은 그 이상은 리더로 섬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리더는 참된 리더이신 주님을 먼저 좇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 된다. 그럼으로 그는 '지배자'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본을 보이는 사람이 된다.

민주주의를 그 부정적인 면에서는 중우정치라고 한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인 경우가 많다.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은 모든 국민 혹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 그리고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 정확하고 열린 정보의 공유,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너무 낮아도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힘들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달콤한 사탕을 지금 당장 달라고 떼쓰듯 일반적인 국민정서나 교육수준이 낮으면 어리석은 백성들을 미혹시키는 정치가 판을 치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되면 이름만 기독교이지 온통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사사시대와 다를바 없게 된다.

그래서 항상 중요한 것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어제 말씀에선 다윗이 적장에게 빌붙어 살고 친족인 이스라엘까지 칠 수밖에 없던 상황까지 갔었지만 적장들의 반대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다윗은 위기의 상황을 넘겨 시글락에 돌아오자 경악할만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살던 곳은 모두 불타고 모든 주민들이 적들에게 끌려갔다. 너무 어처구니 없고 슬퍼서 돌아온 이들이 피곤해질정도로 운다. 이런 상황에서 옛날에는 지도자가 자결하거나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백성들은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한다. 

그런데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의 첫째 덕목이다. 상황이 다급하고 사람들은 외면 혹은 반란의 기미를 보여도 여호와께 나아가 그를 힘입는 것. 다윗의 인생의 성공 비결은 이것이다. 그는 여호와께 묻고 약속의 말씀을 받고 승리한다. 

또 하나의 덕목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필요와 상황을 살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무리해서 600명 모두를 데려가지 않고 피곤해서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따로 쉬게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자신과 동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베데스다 못에서 물이 동하기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병자같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를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다. 그들을 책망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먼저 안식하고 힘을 얻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포착하는데 있다. 전쟁에 별로 관계 없어 보이는 작은 애굽 소년이라도 그를 살리고 보니 전술에 필요한 고급정보를 얻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나 혹은 사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무언가 가치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서 가치있는 것을 창출해 내는 것 역시 지도자의 덕목이다.

이제 다윗에게는 위기가 극복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전리품을 가지고 개선한다.

주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압니다. 인도하기 위해서 먼저 인도함 받아야 함을 압니다. 자유함을 받기 위해 먼저 주님 앞에 온전히 묶여 있어야 함을 압니다. 일 자체에 가치를 두기 보다는 주님께 먼저 아뢰게 하시고, 동역자 혹은 동행인 들의 필요를 볼 수 있게 하시며, 또 자칫 흘려보낼 수 있는 작은 것을 귀중히 여겨 승리를 얻는 큰 요인으로 쓰임 받게 하소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돌 되신 주님은 세상적으로는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을지라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삼으셨으니 그 이름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역사하심 아래 오늘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