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시절 신학교 다니던 후배가 'God’s people never learn' 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얘가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럼 하나님의 백성이 바보란 뜻이야?”라고 생각하며 불편해 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보고 오늘 말씀의 사울을 보고 나 자신을 보자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울은 이제껏 몇 번이고 다윗을 죽이려다 실패했지만 7전8기로 다시 다윗을 죽이러 또 3천명을 이끌고 내려왔다.  완고하고 강박적이기 까지하다. 그리고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우지를 못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한때는 예언도하고 성령에도 사로잡혔던 사람이었으며 또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었는데 아직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누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영어로 ‘God’s people’이 있고 또 ‘People of God’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당시는 말장난 같았다.  사실 말장난이고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차피 둘 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나눈 것은 어떤 필요성 때문인데, 아마도 크리스천 중에도 영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육적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래서God’s people은 혈통적이고 종교적인 배경 즉 이스라엘 백성 혹은 지금의 ‘교회 다니는 사람들’로 정의될 수 있고, People of God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백성으로서 영적이며 거룩한 성도이고, 죄도 짓고 실패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배우고 열매를 맺는 사람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면 우리가 참된 쉼을 얻는다라는 말씀에서 ‘내게 배우라’라는 말씀에 관심이 간다.  영어 번역에서는 대부분 ‘내게’에서 ‘게’를 from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킹제임스역에서는 of로 번역했다.  여기에 쓰여진 헬라어 ἀπό(strong 575)는 많은 경우 from으로 번역됐지만, 간혹 가다 of로 번역되었고,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는 말씀에서는 by로 번역되었다. 그 의미는 ‘분리되어진’ 혹은 ‘어떤 연합체로부터 떨어진’ 등이 있다.   또한 ‘배우다’라는 말의 헬라어 μανθάνω (strong G3129)는 ‘듣다, 정보를 얻다, 지식을 얻다’라는 뜻도 있지만 ‘행함 혹은 따라함으로 배우다 혹은 할 수 있도록 습관화 되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백성은 배워야 하는데 배우지 못하는 백성이 있고 배우는 백성이 있다.  열매 맺는 백성이 있고, 평생 고집과 아집과 집착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백성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뭘까?

다윗도 다시 사울이 내려온 것을 보고 그의 의중을 알고 오히려 먼저 가서 사울을 제거할 기회를 얻지만 또 다시 기회가 왔는데도 그를 죽이지 않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에 대해 상기하며 단지 후에 사울에게 보일 물증만 취한다.  여기서 다시 주목할 것은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그의 삶에는 항상 ‘여호와’의 이름이 함께 있었다.  ‘여호와 구원’이신 새로운 이름 ‘예수’는 이제 우리 삶에 항상 있을 이름이다.

마태복음 11장 29절과 헬라어를 보며  ‘하나님의 백성’ 중에도 배우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혹은 내가) 예수님께 가서 그의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지 않아서이다.  참된 안식이 없으면 쉬지 못하고 힘도 없고 열매도 없고 배움도 없다. 그런데 ‘내게 배우라’를 보면 learn of Me인데, 그것은 주님 자신을 impart하는 무엇이 있다.  마치 성찬식에서 떡을 먹을 때, 우리는 주님을 취하고 거기서 어떤 impartation 즉 주님의 어떠함, 주님의 생명, 그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 우리와 연합하는 것을 본다.  그러고 보면 이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성만찬에 대해 카톨릭은 화체설을 주장하여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하여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지만, 그것이 옳고 그른것을 떠나서 주님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몸이라 (눅 22:19)’ 또 ‘이것은 … 나의.. 피니라 (마 26:28)’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받는 빵과 포도주가 주님이라고 하신다.  고전 11:24-29에서도 성찬은 단지 ‘예식’으로 끝나면 안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주님께 가서 그 분을-of (혹은 그분께-from) 배우려면 나는 우선 그의 피로 정결케 되어야 하고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생명의 배움이 시작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변하지 않는 것은 먼저 육신적이나 종교적인 백성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참으로 거듭난 영적인 백성이 되어야 하고, 그의 피를 적용함으로 깨끗해져서 날마다 그를 취하고 생명을 얻음으로 그분을 배워야 변화될 수 있다.

주님, 정말이지 변하지 않는 내 자신을 봅니다.  나에게 꼭 맞는 유일한 것은 십자가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깨끗게 하시고 주의 생명으로 나를 채우소서.  내가 배우고 변할 것입니다.  주님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함을 고백하오니 오늘 저를 비우시고 채우시고 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