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나의 이성이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씀들이 꽤 나온다.  오늘 말씀이 그 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믿음의 사람인 다윗은 오늘부터 실패와 시험과 시련의 기간을 지나게 된다.  마치 집에서 쫓겨나온 야곱처럼 방황한다.  계속 여호와를 의지하던 다윗이 오늘 말씀에는 그가 여호와를 의지했다거나 믿음으로 행했다는 말이 없다.  물론 그는 먼저 성소를 찾지만 그것이 오늘 설명과 같이 해석될 수도 있는 동시에 다윗은 결국 성소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다는 처지였음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다.  성소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그것은 처량함과 동시에 역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인가?  아무튼 그의 모습은 그저 며칠 굶은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다.  계속 거짓말을 하고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자신의 굶주린 배를 채우려한다.  아… 기름부음 받은 다윗의 신세가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거나 혹은 아예 계신것 같지 않고 모든 상황이 불안하다.  예전의 ‘만만’은 어디로 가고…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다윗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요즘 여러 목회자들의 상황이 떠오른다.  두 가지 양극으로 나뉘는데, 너무도 권력과 부가 막강해서 그 안에서 자신들이 영적으로 굶주리고 헐벗은 것을 모르고 (계 3:17)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상황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정말 현실적으로 힘들어서 과거 받았던 소명에 의심이 가게되는 상황에 있는 목회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으로 신학을 했는데, 목회를 하려니 여건이 만만치 않고 할 수 없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택시운전이나 막노동 아니면 여러 다른 일들에 종사하게 되는 상황에 있는 분들이 꽤 많다.  그런 분들 마음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들게 될까?  참으로 안타깝다. 한면으로 그들이 다윗보다 나은 점은 그래도 쫓기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우선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분석해보면…

제사장 아히멜렉: ‘아니, 다윗이 여기에 왜?  거기다 혼자고 몰골은 저게 뭐람?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닐까?  … 비밀 수행 중이라고?  들어보니 거짓말 하는 것도 같고… 그래도 달라는대로 줘야지.  여호와 하나님이여, 줘도 되겠나이까? (도엑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22:10”)  여호와께서 줘도 된다고 하시니 줘야겠군…  칼도 주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다윗: ‘아, 증말 배고파 뒤질 것 같다.  내 신세가 이게 뭐람… 내가 정말 기름부음 받은 거 맞어?  뭐라도 좀 먹어야지.  지금 배고픈데 율법이 문제냐.  ‘도엑’?  저 사람이 여기 왠일이지?  아무튼 먹을 건 생겼고… 뭐 무기가 없나?  그래?  골리앗의 칼이 있단 말이지?  그거 좋군.  내가 쓰긴 힘들겠지만 그걸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군.’

 

도엑: ‘음?  다윗아냐?  제가 지금 여기 왠일이지?  흠… 정말 비밀수행을 하고 있는 걸까?  사울왕께 아뢰야겠군.’

우선 이 장면이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는 본유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의지함을 떠나 과거의 성공을 상징하는 유물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또한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장면에 대한 주님의 언급이다.  마가복음 2장26에는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며 다윗이 한 일을 변호하고 계시고, 또한 다윗 혼자 있었다고 오늘 말씀은 기록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때 다윗과 함께 한 자들도 있었다고 하신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다윗이 왜 빵 5덩이를 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아마도 자신이 모두 가져가서 두고두고 먹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중에 만나게 되어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에 혼자 가서 그들의 음식도 가져간 것이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생각나는 신약의 말씀들은 위의 마가복음과 같은 내용인 눅 6: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그리고 마태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이다.  진설병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유대인들에게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대제사장에게 일년에 한번만 허락되었던 지성소가 모두에게 개방되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후로 바로 수습해서 다시 막아놓았겠지만, 이 사건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오늘 말씀이 아이러니라고 느껴지는 것은 ‘율법’과 ‘상황’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틀’을 대표하는 지성소 휘장이 마태 27:51에서는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다.  즉 하나님께서 찢으신다.  내가 생각해서, 나의 틀 안에서 아이러니라고 비판하는 것들에 대해 주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과 이유는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주님, 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듯이, 오늘 저에게도 열린 마음을 주시옵소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1, 23)”고 하신 말씀처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주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소서.  오늘 내 안의 휘장을 찢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