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관계가 무엇일까?  오늘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서 그에게 의리를 지킨다.  의리라… 그렇다면 조폭들의 의리가 가장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관계일까?  그건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다.  죄성으로 가득찬 인간에게 있어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죄된 인간의 본 모습이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다. 

12절-23절에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아홉 번이나 언급한다.  즉 이것은 단지 요나단이 인간적으로만 다윗을 아끼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의 그 사랑과 배려 뒤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어떻게 행하시고 보응하시리라는 것 또한 그는 알고 믿었다.

가끔 돌아다 보면 나의 믿음이 형편없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믿음은 있어서 그나마 다시 주님께로 돌아온 적이 여러번이었던 것을 본다.  (음… 사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이나 성경에 대한 의문도 물론 많이 있었지만 주님의 긍휼이 이제껏 인도하셨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는다면, 실존주의로(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게 하는 실존주의), 그리고 쾌락주의로, 그리고 쾌락주의로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허무주의에 빠져 결국은 인간의 삶은 의미가 없게 된다.  이러한 ‘주의’들이 쳇바퀴처럼 돌다가 그 과정 속에서 '창조주를 기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잘못된 결정으로 삶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그러고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다음 생’이란 얼마나 악하고 마귀적인지 모른다.  인간에게는 윤회하는 ‘다음 생’이란 없다.  어떨 때는 윤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은 유혹이요, 책임회피며, 영벌로 들어가게 하는 잘못된 사상이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말씀하며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으로 인해 먼저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갈 6:10)” 해야한다.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인해 우리는 먼저 믿음의 가정들에게 선대를 해야하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나아가서 단지 사람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만유를 회복(행 3:21)하시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와 환경에까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한다.  자기 생명처럼 그를 사랑한다.  동성욕자들이 자신들의 욕심으로 성경을 억지로 풀기 위해 그 둘의 사랑을 육체적향연으로 타락시킬 수 없는 것은 바로 요나단의 기본적인 입장은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그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주여, 오늘 보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주님의 제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으며, 주님의 권위와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게 하소서.  내 안에서 더욱 강해지시고 커지시며, 나를 더욱 소유하소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내 삶 속에 적용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