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좋아’했다. 영어의 여러 번역을 보니 대충 그 내용이 우리 말로 ‘아꼈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이 친구던 아랫 사람이던 그 누구던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MSG 라는 번역에서는 treasure이라는 단어를 썼다. 즉 보화같이 여기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다윗에게 가치를 두었다라는 이야기다.

나는 한 영혼에 얼마나 가치를 두고 있을까? 주일 학교 선생도 해보았지만, 정말 어린 영혼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 학생부 교사 혹은 전도사다. 최근에 페북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역시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프리카에서 남자가 아내를 얻기 위해 처가댁에 동물(소?)를 주는데, 보통 한 마리에서 정말 귀한 처자를 얻으면 몇 마리 더 주는데, 어느 남자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여자를 아내로 얻기 위해 9마리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그 여자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놀랍게 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요나단이 다윗을 아꼈던 것은 다윗이 사랑할만하기 때문에, 또한 정말 가치 있고, 만인에 의해 입증된 인품이기에 사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에서 아내를 새로 얻는 남편은 그 아내가 특별히 뛰어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여인에게 가치를 부여한 사람이다. 아, 난 얼마나 내 아내에게 가치를 부여했고 혹은 그에게서 가치를 발견했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형편없을 때 우리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셨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말씀한다. 천국을 말씀하시지만 사실 천국의 개념은 우리가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 당신과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의 감추어진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 사신 분이다.

로마서 5장에는 쇼킹한 말씀이 나온다.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 눈물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말씀으로 나는 한달 간 울었다. 왜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같은 것 위하여 인간으로 오시고 온갖 고생하시고 죽으셨나. 하나님은 바보가 아니신가? 내가 형편없는 처지에 있을 때,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이것은 시간적 개념을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제 나는 더이상 ‘죄인’이 아닌, 법적으로 모든 것이 다 지불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있는 사람으로, 그 분의 treasure로 변한다. 물론 아직 때도 뭍고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지만, 계속해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해 나는 갈리고 또 갈리며 변함받아 그 날에는 보석같이 빛날 줄 믿는다.

하나님은 바보가 아니시다. 믿는 이들의 가치를 미리 보시고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분이다. 우리를 위한 참된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