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제목은 ‘하나님이 떠난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떠나셨고 바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모두가 나에게는 낯설지 않다. 내 안에 있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이 첫 소절을 전에는 다중인격자 모습 내지는 여러 모습으로 너무 바쁜 나의 어떤 면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내 속에는 나 자신이, 내 자아가 너무 크다는 말로 이해된다. 분명한 것은 내 자아가 너무 강해서 ‘당신이 쉴 곳 없’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사로잡은 사울은 이제 정신없이 떠들어 댄다. 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을 때는 예언을 했지만, 이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횡설수설 지껄인다. 남을 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의 약점을 들춰내고 남과 나를 죽이기까지 하는 지옥의 불을 내뱉는다. 아… 뒤를 돌아다 보면 한면으로 너무나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다른 한면으로는 정말 내가 이래가지고 ‘천국’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얼마나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 많았나…
더우기 사울은 욕심과 질투가 죄를 낳고 죄가 커지니 사망을 불러 오려한다. 살인 미수에 그쳤지만 그것은 바울이 두 번이나 잘 피해서였지 그렇지 않았으면 두 번이나 죽일뻔 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무기가 옆에 있었다면 남을 죽이고 싶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운전하면서 내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그래서 전에는 운전하기 전에 ‘지켜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개같이 운전하지 않고, 주님같이 운전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나는 살인한 자이고 간음한 자이다.
하지만 또 동시에 내 안에 다윗의 모습이 있음도 본다. 또 돌이켜 보면 잘한 것도 있고, 내가 전도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주의 종으로 성장해 감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은혜이다.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내 안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쉽게도 그 선은 절대 선이 아니라, 악에 대한 상대적 선이다. 그래서 나는 방황한다. 바울이 말한 것 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이다. 도대체 누가 나를 이런 상황에서 구할 수 있나? 다시 바울의 고백과 비밀로 돌아간다. (롬 7:24-8: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너무나도 다른 두 모습과 인격이 내 안에 있지만, 의지를 사용하여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다윗을 선택할 때 나는 은혜를 경험한다. 그러고보면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주님을 선택할 때, 주님께서 이미 나를 선택하셨다는 은혜를 깨닫게 된다.
아… 사울 같은 내 모습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봐야겠다.
주님, 주께서 이미 끝내심으로 법적 효력이 발생한 그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주관 하시고, 내 안의 두 사람 중 그 어떤 것도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