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성화’라고 하는 그림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들이 우상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에 있지만, 그것 못지 않게 그러한 그림들이 성경적이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성화는 아니지만, 어느 그림에서는 지옥을 묘사하면서 불구덩이에서 마귀들이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을 묘사한 그림들을 많이 본다.  이러한 그림들은 마치 마귀는 불구덩이에서 살아남고 오히려 사람들을 영원히 학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들로 묘사하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내 멋대로 살다가 마귀에게 잘보여서 지옥에서 고생을 좀 면하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영원한 불못에 먼저 거짓선지자가 던져지고, 주님을 거역하는 자들과 옛뱀 마귀와 음부와 사망이 던져진다.

오늘 말씀을 읽다가 보통 골리앗을 묘사한 그림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된다.  대게의 경우 골리앗이 방패까지 들고 있는 그림들이 많은데 오늘 말씀에는 무시무시한 골리앗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방패는 다른 이가 들고 앞에서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가 어쨌든 골리앗이 직접 방패를 들고 있지 않고 다른 이가 방패를 들고 앞에서 골리앗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한 면으로는 빈틈을 주지 않는 위협적인 모습이면서도 다른 면으로는 그것이 바로 헛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골리앗은 키가 크기 때문에 화살같이 느리게 날아오는 것은 피하거나 앞의 방패든 자가 보호할 수 있지만 물매는 상대적으로 빠르고 잘 보이지 않으며, 방패든 자의 키를 넘어 날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을 생각하면 대게는 나의 문제, 세상적인 도전 등을 떠올리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주님 외에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이다. 

(시 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25: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나의 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실존적인 문제이며,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 문제이다. 소위 ‘악행’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나는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 대한 문제이다.

하지만 골리앗의 헛점처럼 오늘 나는 나의 죄를 참소하는 마귀의 헛점을 본다.  나의 죄가 클수록 다윗의 물매 처럼 보다 우월한 무기인 주님의 은혜는 더욱 크시고, 정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인 율법을 도말하심으로 마귀의 무기에 구멍난 것을 보기 때문이다. 마귀도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참소의 도구인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끝내셨기 때문이다.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아멘! 내 안의 골리앗은 나를 압제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그를 끝내셨다. 그 무서운 모습만큼 주님의 은혜는 더욱 크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