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구원에 너무 촛점을 맞추다 보면 하나님의 전우주적, 전역사적, 전인류적인 경륜을 놓칠 수 있다. '만약에 이 세상에 당신 하나만 존재했었어도 하나님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죽게 하심으로 당신의 죄를 사했을 것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랑의 하나님은 당연히 그러셨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듯이 인류 역사에 단 한 사람만 존재하진 않았다. 물론 성경에는 첫사람 아담과 둘째 사람 그리스도 이 두 사람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지만 그것은 '대표'이지 실제 단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구원을 너무 개인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성경의 여러 부분이 걸리게 된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구약에 율법에서 남색하는 자들 (동성욕자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신 것 처럼, 아이건 어른이건 짐승까지 모두 씨를 말리라고 하신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그런 끔찍한 일을 명하실 수 있을까? 

전에 레이디 가가가 한국에 가서 콘서트를 할 무렵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콘서트를 반대하는 데모를 했었다. 레이디 가가가 동성욕을 promote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편이 갈려서 왜 문화적인 것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해석해서 문제를 삼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토론회에서 진중권 교수가 '하나님 말씀이면 그럼 우리도 구약의 유대인들 처럼 동성애자들이나 특이 민족을 다 죽여야 하느냐?'라는 의도의 질문했고, 거기에 대해 동성욕 반대 입장의 패널은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 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트집을 잡아 따져 물음)하느뇨" (롬 9:20) 아... 거룩한 하나님을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한단 말인가? 웃기는 일 아닌가? 영어의 번역 중에 Expanded Bible이란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Who are you, a mere human being, to talk back to God?"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아이구, 니까짓게 뭔데 하나님께 말대답이냐? 미련한 놈아!"라고 까지 번역할수도 있겠다.

진중권씨 질문에 대해 난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당연히 하나님 말씀이면 순종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우리는 당시 말씀을 받은 유대인이어야 하고, 또 그 시대는 구약시대이어야 하며, 그 대상은 아말렉(혹은 동성욕자)이어야 한다. 그 말씀을 오늘에 적용해서 어떤 특정인들을 살해하거나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말렉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하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 것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차원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오해하는 부분은 바로 신약에서 하나님이 '사랑'으로 정의되셨다는 것인데, 이 '사랑'이라는 말에 문제가 있다. 예전에 척 스미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 '사랑' 즉 헬라어 '아가페'는 기독교 문학 외에는 별로 발견할 수 없는 단어인데, 아마도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낸 독특한 단어일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즉 이 '사랑'은 영어의 love 도, compassion도, 그 어떤 것으로도 온전한 번역이나 해석이 불가능한 말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3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사랑 즉)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어떤 '압축된' 특이한 단어인 것임을 본다.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자'로 말씀하신 것 처럼, 이 '아가페' 역시 모든 거룩하고 좋은 것을 함축한 단어인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스스로 '걸러서' 순종한 사울을 보면서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와 오버랩된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내용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왜 이미 죽은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말렉과 골리앗을 '죄'라고 해석할 때, 우리는 그 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죄 중에는 그 모양이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하지 않는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는 말씀을 생각한다. 악 중에는 좋은 모양도 있으니 그렇지 않을까?

내 삶속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이미 해결된 죄의 문제가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내 맘속에 남겨 놓은 죄의 어떤 모습이 있음을 느낀다. 이 문제는 죄성이 있는 인간으로서는 평생 십자가를 적용해야 할 문제이지만, 혹시 베어버리지 못한 골리앗의 목이 있는지 나를 비춰주시기 원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내려놓고 끊어야할 것을 말씀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