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를 보면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인물이 나온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부자지간이다.  이걸 보면 죄나 성품이 꼭 유전되지는 않는 것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전가는 유전면이 아니라 대표면을 말하는 것 같다.  아담의 죄가 자손들에게 유전되었다면 아벨의 의도 없어야 하는데 아벨은 의인으로 나온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지만, 아벨은 히브리서에서 믿음에 의해 의인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아담이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인류에게 들어온 것은 유전되는 죄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변질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롬 5:12에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면서 인류를 대표하는 한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기에 이 ‘인류’라는 존재는 이제 죄적 존재가 되었고 이제는 그 정체성이 죄인이므로 그 하는 일이 죄라는 것이다.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보면 오히려 사울에게서 내 자신을 많이 본다.  특히 오늘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권의하자 그때서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울의 소극적인 태도는 너무도 나를 닮은 것 같다.  잘 되지 않으면 남의 탓, 잘 되고 있으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셨다고 그의 뜻을 더 이상 물을 필요없이 일에만 매달리려던 나의 모습을 사울이 폭로한다.

사울은 키만 컸지 원래 의기소침하고 수줍은 인물인 것 같았는데, 왕이 되면서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다.  ‘왕’이라는 자리에 있어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정말 그런 자리에 있게 되면 사람이 변하는 걸까?  돈 많은 재벌 2세들이 으시대는 드라마를 보자면 정말 현실에도 저렇게 안하무인일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면 현실에서는 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아마도 중학교2학년 쯤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역의 대합실에서 많아야 30초반 밖에 되보이지 않던 남자가 60도 넘은 역원에게 반말하며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상당히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어릴 때 ‘니가 누군데?’라고 되묻고 싶었다.

아무튼 사울은 사람이 변한 것 같은데 오히려 아들인 요나단 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궁금한 것은 정말 ‘왕’이라는 자리가 그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나, 아니면 원래 그런 모습은 감추어져 있다가 왕이라는 자리가 만들어지자 드러나게 되었나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꽤 신사적이고 자상하며 착한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이 폭로되는 생활의 연속이다.  나 자신도 나의 악함과 미련함에 놀랄 때가 많다.  뒤돌아 보면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환경이 바뀌면 내 안의 것들이 드러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됨을 폭로한다.  고린도 전서 10장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말은 항상 되새길 말씀이다.  사실 내가 서있는 것 같지도 않을 때가 많지만, 혹시라도 서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위험한 때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자리들을 주실 때, 내 안의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것들이 폭로되기 전 그 앞에 먼저 나아가 점검 받고 다시 한번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