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종교의식만 남는다면 큰 비극이다.  특히 영적 리더에게 있어서 그것은 사형선고와 다름없고 그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죽거나 회개하는 것이다.

엘리는 어린 사무엘에게 질투가 난 것인지 아니면 그를 어리다고 무시한 것인지 모르지만 신언을 토해내라고 위협에 가까운 닥달을 하다가 말을 들어보고 나서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말을 여호와의 말로 인정하지만 거기에 대해 긍휼을 구하거나 통회자복하지 않고 ‘맘대로 하시구려’라는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4장에 그의 아들과 죽임을 당한다.

오늘 아침 아내와 ‘부흥’에 대해 잠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내에게 ‘부흥’이라는 단어가 잘못쓰이고 있다는 말을 했다.  부흥(復興)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이라고 정의한다.  영어로는 revival이라는 단어를 쓴다.   어릴 때 부터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부흥회’ ‘등으로 매우 익숙해진 단어지만 우리 말 성경에는 고작 하박국 3장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구절 단 하나만 등장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revive라는 단어가 번역본에 따라 7-13번 정도 등장하지만, 호세아 6장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에서 ‘살리시며’가 revive로 되어있다.

결국 ‘부흥’이라는 단어는 어떤 면으로 적극적인 단어가 아니라 소극적인 단어이다.  보통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여 떠들썩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오는 사람들에게 잔치라고 선물도 나누어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흥은 회개를 통하여 조용히 각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어제 큐티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서서 사무엘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때문에 ‘서서’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서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은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4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기가 닥친다.  블레셋 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엘리와 두 아들이 죽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사무엘을 택하시고 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받는다.

그러나 8장에는 사무엘의 두 아들도 죄를 짓는 것을 본다.  아… 영적리더들에게 있어 자녀교육은  정말 힘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