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하기 전 목회를 꿈꿀 때 농담처럼 다른 이들에게 말한 것이 있었다. 20명 모이는 교회를 7천개 세우거나 아니면 14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하겠다고. 사실 14만 명 모이는 교회를 할 수 없다는 전재하에 말한 것이기에 소위 ‘20명 교회’가 내가 바라는 교회 상이었다. 20명 교회가 계속 성장하며 분리하여 7천개의 교회로 세워질 때, 각 블럭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그래서 블럭 블럭이 변화받고 세상을 바꾸는 그런 이상이었다.
‘20명 교회’의 이점은 그 크기가 작아서 모이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즉 가정 집에서도 모일 수 있고, 어른 20명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십일조만 해도 그 중 목회(리더)를 맡은 부부는 먹고 살 수 있고, 예배에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세대간 격차도 줄이며 아이들이 부모의 예배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이상적인 생각을 했었다. 후에 풀러에서 들은 한 수업에서 아닌게 아니라 미국인들 중에 롱비치 쪽에 그런 교회를 이미 하고 있다는 그룹의 리더를 불러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형교회의 고민은 어떻게 큰 몸집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한 가정’이라는 인식아래 유기적인 생명의 흐름과가정적인 사랑의 나눔이 있는 교회로 운영될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서 소위 ‘점조직’이라고 하는 방법이 생겨났는데, 그것을 속회, 구역, 소그룹, 셀 등 여러가지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 ‘대예배’의 top-down을 벗어나 서로간의 거룩한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각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양육과 훈계를 받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소그룹을 실행함에 있어서 ‘교재’도 마땅치 않고 ‘교제’도 사실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그룹 리더의 훈련이나 자질, 혹은 영성 그리고 교회의 관심과 인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문제인 것은 ‘소그룹’에 대한 교인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교회는 소위 ‘대예배’ 시간, 주일 하루 모여서 설교듣고 가면 충분한 것으로 인식되어 주일 예배 설교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교회 홈페이지에는 대게 담임목사 설교가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한다. 그래서 ‘큰 교회’에 가면 자신의 믿음도 좋고 큰 것일 수 있다는 착각에도 빠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인들은 교회에 왜 ‘모이는 지’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단지 예배하고 말씀듣고 봉사하고 (교회 내에서) 그리고 여건이 되면 ‘사회 봉사’나 ‘단기 선교’에 참여하고… 더우기 우리 교회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매년 교회 표어는 바꾸지만 바뀔 수 없는 교회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왜 ‘다른 교회’가 아니라 ‘우리교회’에 나와야 하는지 모른다. 물론 ‘우리교회’ ‘다른 교회’는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소유자이지만 (나는 그래서 대표기도나 회중 기도를 할 때 ‘우리 교회’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주님의 교회’라고 한다).
이런 면에 대해 나는 하나를 제안한다. 소위 ‘대예배’ 시간 설교 말씀을 가르치는 말씀, 위로의 말씀, 훈계와 회개의 말씀 등도 물론 전하지만, 매주 귀가 따갑도록 들려줘야 할 말, 모든 교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되풀이 해야 한다. 그것은 교회의 목적이고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에 대한 말씀이다.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한 두 마디로 정의해서 계속해서 주입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회는 ‘~~ 하는 교회’ 혹은 ~~를 목표로 하는 교회라는 것을 교인들이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러나 하나를 제안한다면 ‘우리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라고 하는 것보다는 ‘수천명 수만명이 모이지만 소그룹으로 한 가정같은 사귐이 있는 교회’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진정한 교육과 양육은 자연히 선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그룹을 양성하고 활성화 하기 위해 오히려 주중 수요예배 같은 모임을 자연스럽게 소그룹으로 변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즉 소그룹 모임을 집에서 모일 수도 있으나, 교회에서 그룹별로 모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그룹에서 하는 것은 아래의 세가지이다.
교육 – 신학, 교리, 성경공부
감동-‘대예배’때는 ‘아멘 아멘’해도 정작 밖에 나가면 믿는 이들 사이에서도 신앙에 대해 나누려고 하면 서먹해 진다. 밖에서도 서로 만나면 ‘할렐루야 아멘’할 수 있게 감동의 교제가 있도록 훈련한다.
참여에 대한 도전 – 봉사, 선교 등에 대해 지속적인 도전을 한다. 교회에서 마련한 여러가지 좋은 프로그램에 대해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