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바울에 동의하는 것은 그 내용이 매우 깊고, 읽을 때 느낌이 바울 서신과 비슷하며, 바울 서신의 전개와 비슷하고 특히 마지막에 짧게나마 문안인사가 있는 것이 매우 비슷하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지만 내가 전에 썼던 이메일의 signature는 ‘Peace for the Jews, Grace for the gentiles, and Unity for the Koreans’라고 적었다. 지금은 signature를 잘 붙이지 않지만 이메일을 받아본 사람들의 반응이 좀 궁금하다. (ㅎㅎ)
우리가 아는대로 전이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의 인사는 ‘샬롬’이다. 우리의 인사가 ‘안녕하세요?’ 인것 처럼 이것은 물론 ‘평강’을 뜻하며 오랜 핍박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 전후서를 포함하여(물론 이 둘은 베드로가 저자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쓴 그의 모든 서신에 ‘은혜와 평강’을 언급하고 있다. 즉 유대인들을 향한 인사 ‘샬롬(헬라어로는 에이레니)’과 이방인들을 향한 인사 ‘은혜(헬라어 카리스)’ 이다. 오늘 큐티 20절에 ‘평강의 하나님’ 그리고 25절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이 있는 것처럼 역시 히브리서에도 이 둘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둘이 중요한 만큼 저자는 ‘문안’을 빠뜨리지 않는다. 자신들보다 영적으로 어리고 여린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끈끈한 정이 묻어 나오는 인사를 하고, 서로 문안하기를 권유하고 있다. 그 이유는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다가올때, 그 분을 우리가 은혜로 경험하고 누릴 때 우리는 하나가 되어 서로 문안하기 때문이다.
‘신’을 뜻하는 우리 말은 원래 ‘하늘님’ 즉 ‘하느님’이다. 이것은 애국가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다. 즉 하나이신 분이다. 그러나 이 하나이신 분은 또한 삼위를 갖는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세분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라는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신학적으로 논쟁이 많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뜻은 세분으로 나타나고 보이기 까지 하는 분’들’이 하나이신 것처럼 그 안에 연합이 완전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그 생각만 하면 머리 아프다. 그리고 짜증도 나고 또 결국 너무 슬프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문안할 수 없다. 오늘 서로 마음을 터놓고 문안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