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십자가는 독특한 상징이 되었다. 물론 십자가의 유래는 로마 제국의 잔인한 형벌의 하나로 죄인을 달아 말라 죽이는 아주 혐오스러운 도구지만, 하나님 아들이신 주님께서 달려 돌아가신 그 십자가는 믿는 이들에게 구원의 상징이 된다. 로만 캐톨릭에서는 아마 이것 때문에 십자가와 크루스픽스 (crusfix, 예수 상이 있는 십자가)를 달리 취급하는지도 모르지만 크루스픽스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충분히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주님은 죽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십자가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자체 역시 자칫 잘못하면 우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씀한다 (고전 1:23). 언제나 그리스도가 답이다.

이 십자가는 성경 여러 곳에서 ‘나무’라고 말하는데, 죽음의 형틀인 이 십자가는 계시록에서 온전히 그 본 모습을 보여준다. 계시록 22:2에서는 하나의 생명 나무가 강 좌우에 뿌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나무'라는 단어가 좀 특이하다. 보통 성경에서 쓰인 나무라는 단어는 δένδρον라는 말로 몸통과 가지와 앞사귀 등의 일반적인 모습의 나무를 말하지만 ‘생명 나무’에서 쓰인 단어는 살아있는 나무가 아닌 오히려 그냥 '목재'에 가까운 단어인 ξύλον ('ㅋ슬론) 이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19번 나오는데 많은 부분 주님께서 달려 돌아가신 십자가 (나무)를 가리킨다. 십자가는 계시록에서 궁극적으로 생명 나무로 나타나고, 생명 나무의 본질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진정한 생명이 터져나오고 또한 그 생명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다. 마치 보기에는 죽은 것 같아 보이는 이 목재 같은 '나무'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처럼 살아 있고 생명의 나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짐을 덜고 생명을 얻으며, 또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짐으로 영원하신 생명을 누린다.

서있는 십자가, 서있는 사람들, 서서 싸우는 용사들

십자가의 원어는 σταυρός 스타우로스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ἵστημι (히스테미) 라는 단어로 ‘서다, 굳게 세우다’ 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는 스타우로스 라는 단어와 더불어 히스테미도 보인다. 해골 언덕 위에 주님의 십자가가 굳게 세워졌고, 더불어 행악자들의 십자가도 양쪽에 서 있고, 주위에도 사람들이 구경하며 서 있다 (35절). 관리들도 서서 비웃고, 군인들도 희롱하며 서 있다.

시 1:1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는데, 이렇게 죄인들의 길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에베소서 6장 11, 13, 14장에는 원수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서는’ 믿음의 용사들이 보인다. 주님을 찌른 병사들은 주님을 조롱하며 서 있었지만, 우리 믿음의 용사들은 원수를 대항하기 위해 선다. 주님의 십자가가 굳게 세워지고, 사랑의 율법을 굳게 세우며, 원수를 대적하기 위해 굳게 선다.

갈리는 구원

같은 시간에 옆에 못 박힌 두 행악자들은 아마도 같은 죄를 지은 것 같다. 40절에 ‘동일한 정죄를 받고도’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둘은 공범을 저질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둘의 운명이 갈린다. 회개하지 않고 군중을 따라 주님을 시험했던 행악자는 구원을 얻지 못하지만 같은 죄악을 저지르고 십자가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다른 행악자는 주님께 구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 상황에 대해 마 27:44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라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처음에는 둘 모두가 주님을 욕했지만 주님께서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그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나보다. 그 행악자에게는 죽음을 앞두고 용서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고백했고, 그의 이러한 고백에는 회개와 믿음이 담겨있다. 이 고백은 원어로 ‘당신의 왕국 안에 돌아오실 때’ 라는 말이다. 즉 이 행악자는 죄악이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십자가에 달려 힘없이 죽어가는 주님를 보면서도 주님의 왕국이 임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었다.

주님, 주님의 생명과 용서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묵상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전한 용서와 구원을 이루셨는데, 이 온전한 용서와 구원을 누리기 위해 나도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필요함을 봅니다. 고난주간 성금요일이라서 특별히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십자가를 지는 하루 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 주시는 힘으로 서게 하시고, 어제가 어떠했든 오늘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왕국이 임하시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