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죽으심을 기록한 마 27:50그리고 요 19:30에는 한국어 및 영어 번역에는 없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모두 ‘프뉴마’를 ‘내놓다, 버리다, 맡기다’ 등을 썼다. 막 15:37에는 ‘엑세프누센’ 이라는 단어를 써서 ‘에크 (밖으로)’ + ‘프네오 (숨, 바람, 공기)’의 의미로 역시 비슷하게 영(숨)을 밖으로 내보냈다는 뜻이다. 눅 23:46은 앞의 둘을 모두 포함해서 ‘프뉴마’와 ‘엑세프누센’ 둘 다 사용했다.
보통 사람이 죽을 때는 ‘영’을 보냈다고 하지 않고 ‘혼’이 떠났다고 말한다. 즉 ‘목숨 (ψυχήㅍㅅ헤 – 편하게 그냥 프시케)’이 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요 15:13에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 제일 큰 사랑임을 말씀하시며 이 목숨 즉 ‘프시케’ 다시 말하면 ‘혼’을 버리는 것이 죽는 것임을 말씀한다. 또 행 5장에서 아나니아가 죽을 때도 ‘혼’이 떠났다고 기록한다. ἐκψύχω 라는 단어는 위의 ‘엑세프누센’과는 달리 ‘에크’와 ‘프시케’를 쓴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도 죽으실 때 혼도 떠나셨겠지만, 성경은 영을 내어주신 것에 대해 모두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영을 내어주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과 영의 문제에 대해 보통 2분법 아니면 3분법을 말하며 인간은 영과 육 두 부분 아니면 영혼육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가지고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씨름해 오면서 내린 결론은 성경에서는 세부분 모두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선 기본으로 인정하고, 그런데 왜 사람들은 2분법 즉 혼은 빼고 영육만을 언급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니, 물론 역사적으로 삼분법을 고수하던 사람들 중 이단으로 빠진 무리들이 있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문제가 손으로 만지거나 이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차원을 뛰어 넘은 것이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성경은 분명히 셋 모두를 말씀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그런데 인간을 이루는 이 세가지 요소 영 혼 육이 ‘세부분’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같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신 후 코에 바람 (영)을 불어넣으시자 인간이 살아있는 존재 (living soul)가 된 것을 기록한다. 즉 땅의 흙을 가지고 그 모양만 완성되었을 때는 그냥 ‘육’만 존재했지만 하나님의 바람 즉 ‘영’이 콧구멍으로 들어가자 사람이 살게 되어 인격과 기능이 생기고 움직이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흙의 재료로 구성된 몸과 하나님의 바람 즉 영이 만나서 살아있는 인격이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세부분’은 있지만 서로 나뉘어지는 세 ‘부분’이 아니라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연합이다. 그래서 이 연합이 깨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한 후에는 영의 기능이 멈추고 쇠퇴하여 혼이 우선적으로 기능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자 제일 먼저 본 것이 전에도 계속 봐왔던 자신들의 벗은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즉 영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이제는 혼으로만 인식하는 죄적인 존재로 타락했다. 결국 우리의 인식에는 영과 혼을 구분할 수 없고 이 둘이 섞여버린 ‘영혼’이 되어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 즉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잠재의식 혹은 의지와 생각에 속한 것인지에 대한 인지가 불투명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영’과 ‘혼’을 구분해서 말하면 헷갈려하고 ‘영혼’이라고 해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물론 ‘영혼’이라는 말은 한자권에서만 쓰는 말로 영어 혹은 라틴계열에서는 이 둘에 대해 구분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는 하지만 ‘영, spirit’라는 말도 요즘은 혼잡하게 쓰게 되었다. 죽은 영과 혼이 혼잡하게 섞여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 4:12는 하나님 말씀으로 혼과 영을 찔러 쪼개서 분별해야 함을 말씀한다.
다시 주님의 죽으심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 ‘혼’을 내놓은 것으로 기록하지 않고 ‘영’을 내어 놓으셨다고 기록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주님의 신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온전히’ 죽으셨다는 말은 단지 인간으로서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말 그 이상이다. 분명 주님은 다리를 꺾지 않아도 이미 숨이 떠나셨고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온 것으로 죽음을 확실히 했지만, 단지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물’ ‘피’와 더불어 먼저 ‘영’을 내어 주신, ‘다 이루’신 우주의 유일한 거룩한 죽으심이었음을 보게된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독생하신 –모노게누스’ 주님께서 그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고, 또 이제 그 죽으심에서 그 ‘영’을 내어주시고, 참 음료이신 생명의 물과, 온 세상 죄를 사하시는 피를 쏟으셨음을 보며 이 분은 정말 완전한 사람이고 또 온전하신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주님,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며 오늘을 보내기 원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생명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그 거룩하신 죽음 앞에서 그 죽으심은 모든 것을 충족하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킨 ‘다 이루’신 죽으심이었음을 더 깊이 알기 원합니다. 그 ‘다 이루심’이 오늘을 사는 저에게 당당함이 되고 모든 도전과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되게 하소서.